ㅡ글을 통하여 소통하는데는 각자의 주관이 개입된다. 그러므로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누구는 비난하고 누구는 무시한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사안이 상대적인 것이고, 소통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방식과 논리를기준으로 사람들간의 소통은 이루어 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보편적인 논리에 입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편성을 중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보편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있다면 일시적인 차이는 사소한 것이다. 그러므로 "맥락읽기"가 중요해진다. "맥락"을 통하여 나의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맥락"을 통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엽적인 사실에 지나치게 가중치를 부과하면 오류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 글 역시 페북에서 페친들과의 소통이 계기가 되었다. 나로서는 너무 빤한 판단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항상 새롭고도 신기한 일이다.
이하 페북의 페친들의 글을 편집하여 글을 구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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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1 "포스팅 1")
[나는 "페친2"라는 분은 모른다. 그러나 '유시민'작가는 TV에서 봐서 '공인'으로 안다]
'페친2'이라는 분의 충격적 주장의 일부이다
"1980년 5월 16일은 신군부를 반대하는 대학가의 대규모 연합시위가 서울역에서 예정되어 있었고, 이는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합의였다. 이것을 '유혈사태'가 예상된다고 철회한 사람이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이었고, 그래서 그 시위는 유야무야 되었고 이를 서울역 회군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모르던 전남대, 조선대 등 광주에서는 예정된 시위를 진행했고 시민들이 대거 합류해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보낸 것이 바로 5.18의 비극이다. 김대중은 그 전날 5월 17일에 합수부에 체포되어 남산에서 몇 개월간 고문 당하다가 계엄군 산하 군사법원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고, 얼마 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당시 서울역 집회를 준비했던 맴버 중에 유시민이 있었다. 당시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으로 심재철과 함께 연합 총학생회 모임에 참석해서 관련 집회를 준비했었다. 1989년 M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서울역 회군에 대해 "신군부가 탱크까지 동원해서 진압을 준비한다고 해서 유혈 사태가 예상되어 집회를 취소했다"고 발언했다. 사실 겁이 나서 집회를 취소했다는 심재철의 주장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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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실인가?
'페친2' 이라는 분의 이 문제 제기에는 '유시민' 작가의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유시민 작가의 답변이 있을 때까지 '중립적 자세'로 기다려 본다.
(페친2 "포스팅")
" 나는 윤석렬이 감옥가서 처벌받는만큼 유시민도 역사의 심판받기를 원한다.그는 수사관이 내민 백지에 선후배 동기 동지들의 아름을 77명이나 꼼꼼하게 써주었던 배신자였다. 선배의 이름 하나를 말하지않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후배 박종철의 죽음을 보고서도 일말의 죄책감이 없었다는게 놀랍다.. 그리고 77명의 명단에 적혔던 그들이 체포구금당해 견뎌야했던 고통에대한 반성문도 없었다는것에 분노한다. 유시민은 반드시 역사의 처벌을 받아야한다. 일정의 앞잡이 밀정이 처벌 받는것처럼 말이다."
(앙장구 댓글)
"윤석열은 법정의 심판 유시민은 역사의 심판이죠. 역사의 심판은 대중의 평판과 후세 역사적 평가를 말하겠지요."
(페친2 대댓글)
"그래서 역사의 심판이라 표현했는데 정확하게 짚어주시네요"
(페친1 "포스팅 2")
[통나무 칼럼] 진정한 리더는 각자의 길로 증명한다
- 유시민 작가 관련 한인섭 교수의 글을 읽고
한인섭 교수의 글을 통해 1980년 신군부의 야만적 고문 앞에서 작성된 유시민과 심재철의 이른바 '자술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마주했다. 한 교수의 통렬한 지적처럼, 그것은 자술서가 아니라 극도의 폭력과 공포 아래 쓰인 '강제 타술서' 공감된다. 그 참혹한 종이 쪼가리에서 밀고의 흔적을 찾으려는 작금의 시도는 과거의 비극을 현재의 정치적 흉기로 전락시키는 비열한 행위다. 고문의 기록은 독재의 잔혹함을 증명할 뿐, 한 인간의 도덕성을 재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해묵은 논란이 남기는 진정한 비극은 따로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연대했던 유시민과 심재철이 180도 돌아서서 서로에게 증오의 칼끝을 겨누었다는 사실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이 같다면, 방법론의 차이가 서로를 파괴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지금 민주 진영이 보여주는 분열의 본질은 같은 목표가 아니라,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는 적대감이다. 나는 바로 이 점을 엄중히 경계한다.
목표가 같다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각자의 능력을 다해 행동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같은 진영 내에서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행위는 극도로 자제해야 마땅하다. 누구의 비판은 정의로운 '특권'으로 용인되고, 누구의 비판은 배신적인 '갈라치기'로 매도되는 위선적인 이중잣대 역시 당장 폐기해야 한다. 특히 진영 내에서 큰 스피커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일수록, 동지를 향한 공격적인 언사를 멈추어야 한다. 상대가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묵묵히 움직여야 한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오히려 갈라치기라고 비난하는 현실이 우습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대한국민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꿈과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실천과 노력이다. 나는 내가 먼저 김어준이나 유시민을 비판한 적 없다. 그들이 먼저 특정인을 비판했고 그 방향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을 뿐이다..
진정한 리더라면, 깨어있는 시민들이 열망하는 시대적 과제를 향해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다르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길에서, 오직 행동과 결과로 증명하면 된다. 과거의 상처를 후벼 파며 아군에게 총구를 겨눌 생각 없다. 이제 그저 사람이 싫어서 소모적인 각자 내부 총질을 거두고, 본연의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더 내디뎌야 할 때다.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지하면 그걸로 족하다. 내심 그것을 왜 서로 선점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서로 총질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웃긴다. 이 세상 한번 성하면 반드시 한번 멸하게 되어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한다면 그 지지하는 방식대로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기존에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은 기존의 방식대로 계속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잘 하고 있을 때에는 날개를 달아드리고, 비판해야 될 때에는 비판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나는 이제 몇 번의 경험으로 날을 세워서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앙장구 댓글)
"개인이든 집단이든 과거를 헤집을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에 충실하면되고, 속임수에 넘어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변수가 없을 때는 편하게 지내면되고, 애매할 경우 과거를 가까운 과거부터, 먼과거까지 참조하여 판단에 보조자료로 삼으면 되지요, 그게 유시민, 이언주, 김민석, 한준호, 정성호, 봉욱에 모두 적용되죠. 이렿게 보다보면 먼과거 소환할 필요도 없습니다."
(페친1 대댓글)
그것도 비판할 필요가 없다고 보입니다. 각자 지지하면 각자 지지의 방식으로 지지하면 됩니다. 같은 목표라면, 목표가 다르면 그때는 비판내지 비난해도 무방하겠지요..
(앙장구 대대댓글)
"필요가 없는 분은 안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은 하고... 남의 동의를 강요하지만 않으면 .. 그게 소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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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인섭" 포스팅
[유시민, 심재철, 1980]
전두환이 권력장악의 완성수순으로 5.17비상계엄 확대하고, 예비검속하여 재야, 정치, 학생들을 엄청 잡아갔고, 어마어마한 고문과 장기불법구금을 자행했다. 그때 조서도 작성하고, 자술서도 쓰게 한다. 말이 자술서이지, 강제타술서와 실질적으로 같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민주화된뒤에, 그때 자술서는 뭐라 썼던 법정증거로 배척된다. 고문과 강압에 의해 쓴 것이므로.
그런데, 그때 그 자술서에 뭘 담았느냐, 혹 동료를 고자질한게 아니냐고 뜬금없이 논란되고, 옆에서 불불이는 사람도 있다. 정리한다.
1. 그 자술서는 강제타술서임. 자발성 전혀 없음.
2. 어떻게 썼던 당시 학생, 정치, 재야운동의 동향은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이미 다 들어 있었음.
3. 그 자술서대로 사건윤곽 잡은 게 아니고, 첨부터 군부가 짠 프레임에 억지끼워 맞추는 것이었음. 유. 심이 뭐라 주장하든 상관없음. 신군부집권에 가장 유리한 프레임대로.
4. 민주화이후 재심과정에서, 1980 서울의봄, 5.17, 5.18과 관련된 모든 구속.유죄건은 무죄판결로 바뀌었음. 그때 고문정권은 내란죄로 단죄된 것이고.
5. 그러니 거기서 뭘 썼던, 그런 것 갖고 상대 흠집내기나 비난할 게 전혀 못됨.
마지막으로 남는 건, 그때 한글자도 쓰지 않고 버텨야지, 동료 이름은 절대 쓰지 말아야지...그래야 투사이고, 민주화운동가라 할 수 있는게 아니냐는 그런 아쉬움의 찌꺼기 같은 것...그런데 그건 사람이 아니라 감각없는 좀비인간. 기계인간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둘 다 극도의 폭력과 위축감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본다. 몇십년뒤의 정치노선 갖고, 소급해서 그때 누가 잘못했니 하는 비난자료로 쓰지 말 일이고.
나는 독재시대 재판자료, 변론자료 많이 정리하고 책도 내고 했다. 자술서도 자주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자술서에 타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가득 들어 있으면, 그 사람도 별수 없네, 이렇게 독해하지 않는다. 그 분이 얼마나 고초에 시달렸으면, 안쓰고 견딜 수 없었구나. 이 고문한 나쁜 놈들...이렇게 판독하면서, 그때 그의 고통을 같이 느껴보려 애쓴다.
자술서의 내용은 고문의 심각성을 재는 바로미터다. 유, 심의 강제타술서에 뭔가 마뜩잖은 몇 줄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고초/고문의 정황증거이지, 그들이 밀고자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술서 다 공개해서 대중에게 판단받으라는 말도 한다. 30년전의 타술서를, 당시의 공포스런 수사환경도 잘 모르면서, 사건 맥락도 모르면서, 정치공격용으로만 악용될 그 자료를 호기심의 먹이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양심에 반해 강제로 쓴 글로 당시 피해를 봤는데, 다시 30년뒤 반양심분자로 공격하기 위해 그자료를 공개하라고? 이중의 참혹함이요, 안될 말이다.
난 1980년 때 대학4학년이었고, 대학신문 기자였으므로, 유/심의 활동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둘 다 훌륭했고, 멋있었고, 닥쳐올 고난의 불안 속에서도 각오하고 임한 학생리더였다. 1980.5.17 이전의 그들의 행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후 수사.법정에서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 고초에 대해 함께하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그리고 이후의 정치행적은 각자 판단받을 대목이다.
요컨대, 1980년 정보부,보안사에서 쓴 강제타술서는 개개인의 인간됨 여부를 평가할 자료 자체가 될수도 없는 것이고, 타술서를 강제한 군부집단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인권유린자였음을 확인하는 자료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5월 4일 공유 대상: 전체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