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도피자금.(내 남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집에 면목이 없다. 눈치가 보인다. 지원해 주신 3천만 원을 갚기 전까지는 집에 못 들어가겠어서 가게 근처 고시원에 들어갔다.
얼른 가게를 팔아서 원금을 다시 돌려드려야 했다. 가게에 권리금을 주고 들어가서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우리도 권리금을 조금 챙겨 나와야 손해를 덜 보는 상황이었기에 가게를 제 값에 팔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수학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남편은 학원에 잠시 업무로 왔다가 내가 근무한 첫날 나한테 반했다. 나는 20살부터 미친 듯이 운동을 했고 쌍꺼풀 수술도 해서 예전보다 예뻐졌고 내가 봐도 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가고 있었다.
남편은 키가 작고 뚱뚱하다. 그냥 뚱뚱한 게 아니고 질환으로 보였다. 심각한 대사증후군이 의심되었다. 길 가다 한 번 되돌아보게 될 정도로 고도비만이었다.
매일매일 학원으로 꽃을 보냈다. 월 화 수 목 은 생화 금요일은 직접 접은 좋이 꽃을 작품으로 만들어왔다.
몇 주를 계속 하루도 빠짐없이 꽃을 보냈고 매일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차로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늘 내게 바나나우유를 건넸다.
나는 집에 가는 동안 앞으로는 절대 오지 말라고 잘 타일렀다. 내일부터는 꽃을 보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도 했다. 바나나우유를 쪽쪽 빨아대며 그리 말했다.
나는 외모를 정말 전혀 보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하는 상태였다. 술꾼아버지에 질려 그런 남자를 피하려다 도박꾼 남자를 만나는 심정으로 남자를 보는 내 시각은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
난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은 정말 싫었다. 아빠 생각이 나서 싫었다. 분명 잘난 값을 할게 뻔하다.라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어 보기만 해도 화가 났다. 그러고 보면 내 남편은 잘난 값이라고는 할 것도 없는 내게 최적화된 상대임에도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조금 심했다.
아니 조금 많이 심했다.
남편과 나를 두고 미녀와 야수라는 둥, 포주와 아가씨 같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
언젠가 남편 거래처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남편하고 어떻게 만났냐고 연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저를 6개월은 쫓아다녔어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분이 버럭 화를 냈다.
"2년은 쫓아다녔어야지 고작 6개월 만에 받아줬다고요!"
내 남편은 나 보다도 내 엄마와 더 많이 닮았다.
나에게 그렇게 구애를 하던 중 관계의 진전이 없자 남편이 뜻밖에 제안을 했다.
나의 고충을 알고 있었던 남편은 "쭈~쓰 빵빵"을 자신이 책임지고 제값에 팔아준다고 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계약이 잘 성사되면 자신을 2달만 만나 달라는 것이었다.
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보고, 수학 공식을 대입해 보고, 주판을 튕겨보고, 계산을 아무리 해봐도 답이 없다.
이건 난이도 최상 문제다.
고민고민 끝에 결정했다. 드디어 답이 나왔다.
"먹튀!"
내 계획은 이러했다.
일단 가게를 팔아달라 하고 계약이 성사되면 일을 그만두고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잠수를 타자! 어차피 눈치 보여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잠시 가게 근처 고시원에 나가 있던 참이니 내 집도 모르고 잘됐다.
짐이라고는 고시원에 있는 옷가지 몇 개랑 신발 몇켤래! 대충 싸서 야반도주하면 그만이다. 됐다. 됐어!
그렇게 나는 완전범죄를 꿈꿨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남편이 능력이 있었던 건지!
대략 한 달 정도 뒤에 어쨌든 남편에 의해 가게가 팔렸다. 친구와 각각 2750만 원씩 나눠 가졌다.
이제 슬슬 기회를 보고 튈 준비를 할 시간이 왔다.
그동안 바빠서 남편이 자주 나를 데리러 학원 앞에 오지 못했다.
일 때문에 전화는 종종 했었다. 전화 목소리는 외모와 매치되지 않게 좋았고 나와 말도 잘 통했다.
어느 날 남편이 다시 학원 앞에서 날 기다렸다.
다른 직원들하고 우르르 함께 나오고 있는데.. 클랙슨을 "빵빵"하고 울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남편을 바라봤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람들과 인사를 허둥지둥! 하는 둥 마는 둥! 일단 얼른 차부터 탔다.
" 밟어요. 어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나는 빨리 출발하라고 남편을 다그쳤다. 사람들이 내 시야에서 멀어지자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편은 여지없이 내게 바나나우유를 건넸다.
나는 또다시 바나나우유를 쪽쪽 빨아대며 얘기했다.
"저기요. 죄송한데 앞으로 저 기다리실 거면 사람들 안 보이는 저쪽 구석에 가서 기다리세요"
남편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했다.
남편은 실망했고 속상해했다. 자존심도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앞으로는 안 올게요. 가게도 잘 정리했으니 더는 볼 일 없죠. 귀찮게 해서 죄송했어요. 아프지 말고 잘 지내세요"
불도저처럼 그렇게 드리 댈 땐 뒷걸음질만 쳤었는데 이렇게 철수한다니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감정이 묘했다.
상처 준 게 미안해서? 아님 몇 개월 "쭈~스 빵빵"으로 알고 지낸 시간이 있어서 그런가.. 선뜻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을 못 했다.
대신 이렇게 얘기했다.
"저기요. 살을 좀 빼보시겠어요?"
남편은 말없이 고시원에 나를 내려주고 갔다.
그 후로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한 통 없었다.
나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일하던 학원도 그만두지 않았다.
한 달 조금 넘게 지났을까?
학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퇴근 후 우르르 내려오는데 "빵빵" 클랙슨이 울렸다.
우리는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다!
왜 그랬는지 창피함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뭔가 달라졌다.
맙소사!
반쪽이 돼서 나타났다.
족히 20kg은 넘게 빼고 나타났다.
내리 굶었는지 고도비만이 중증도 비만이 되어 나타났다.
남들이 볼 때는 그랬을 거다.
그런데 내 눈에는 비만은 커녕!
가시밖에 안 남아 있는 걸로 보였다.
나는 그 노력에 감동했다.
하지만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급하게 뺀 살은 요요도 금방 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