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도피자금.(베짱이의 연주는 개미를 위한 공연)
"저는 태생부터 개미 근성을 타고나서 근면 성실한 사람입니다."
"저는 태생이 베짱이라서요. 저랑은 많이 다르시네요!"
"아닙니다. 아니.. 반갑습니다. 베짱이가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면 그걸 듣고 개미는 즐겁고 신이 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나를 꼬실 때 우리가 나눴던 대화이다.
사실 나도 개미근성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땐 누구도 다가오는 게 싫어서.
나는 이 이야기를 꼭 20년 만에 다시 들었다.
코인 투자 실패로 10분 만에 1억 4천만 원이 넘는 돈을 잃고
절망에 빠져 괴로워할 때.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을 때.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마음이 미어져 돌아 누울 수도 없을 때. 내 등 뒤에서 남편이 말했다.
"괜찮아! 안 울어도 돼! 그냥 베짱이로 있어!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돈은 내가 벌어!
돈에 너무 집착하자마! 벌어서 다 줄게!
네가 이렇게 울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엔 남편도 이제 늙고 있다.
29살 패기 있고 포동포동 뽀얀 귀여운 청년은 50을 앞두고 검게 그을리고 흰머리도 제법 늘은 아저씨가 되었다.
작은 키가 더 줄고 있다.
나 만나서 고생만 하고...
남편을 보고 있자니 더 슬프고 더 괴롭고 더 미치겠다.
나는 또다시 방바닥을 네발로 배회한다.
"스물다섯 스물아홉"
그 시절 남편이 급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바람에 내 마음에도 조금의 틈이 생겼다.
우리는 같이 동네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2남 2녀 중 막내아들. 키 170cm(지금은 168cm). 특전사 직업군인.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6년 정도 군 생활 후 전역해서 군 생활에서 모은 돈으로 친구와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한 상태. 현재 일은 하고 있지만 나를 꼬시는 일이 주업이 된 상황.
남편에 관한 신상정보를 지인에게 이야기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특전사는 일주일 정도 천리행군을 하는데 키 작은 사림은 짐을 메고 단체로 행군하기가 쉽지 않은데. 진짜 특전사 나온 거 맞아? "
나는 기억했다가 다음 날 남편과 식사자리에서 물었다.
"군생활에서 단체로 행군하기가 힘들다는데 훈련은 어떻게 버티셨어요?"
남편 표정이 굳어진다. 바삐 움직이던 숟가락질을 멈추더니 이내 밥숟가락을 딱! 내려놓는다.
"어휴 그때 얘기는 하지도 마세요. 다리가 짧아서 남들 한 발짝 갈 때 나는 두 발짝 가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푸하하하"
나는 웃음이 났다
남편은 가식이 없다.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도 없다.
외모콤플렉스 열등감에 똘똘 뭉쳐있던 난. 신선했다.
늘 나를 감추기 바빴고 내 못난 부분이 들킬까 봐 두려움에 떨던 내게 그의 솔직함은 신선함을 넘어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29세의 나이에 그는 쫄딱 망했고 빈털터리 었고 그럼에도 솔직했고 긍정적이었고 어떤 문제도 잘 해결하는 해결사, 손재주가 좋은 홍반장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속이 훤히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작 나란 사람은 속을 모르겠는 음흉한 사람이었던 그때!
그 당시 우리 집에서는 결혼하라고 성화였다.
나는 집이 싫었고 독립을 하고 싶었으나 결혼 외에는 달리 탈출구가 없었다.
그저 이 집에서 나를 구출해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사랑! 그런 거 난 잘 모르겠고.
남편과 연애 3년 차!
나는 그 사이 대학원을 졸업했고, 졸업 후 1년 동안 돈을 모았다. 지금 생각하면 난 결혼자금을 모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집에서 탈출하기 위한 도피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간절히 꿈꿨다!
내 배우자가 될 상대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돈? 외모? 좋은 직업? 그 무엇도 아니었다.
"쉴 곳!"
그래 쉴 곳!
온통 전쟁터였던 내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쉴 곳!
너무나 간절했다. 그거면 족했다.
너그럽고 다정하고 나를 온전히 품어 줄 안식처가 필요했다. 1년 사회생활로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결혼했다.
물론 남편돈도 조금(빚은 많이). 친정집에서 혼수 비용으로 받은 돈도 조금. 그렇게 조그만 투룸 월세집으로 갔다.
혼수도 없이 그저 14K 커플링을 나눠 끼며 그토록 원하던 도피처에 안착했다.
내가 도피한 그곳. 화려하고 근사하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
깊고 안정된 긴 호흡을...
사실 나의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은 미성숙하고 상처 많은 나를 아버지가 자식을 키우듯 키워냈다.
한결같은 사랑을 줬고 그 사랑으로 얼었던 내 마음을 녹이고 쉬게 하고 내 상처를 풀어헤치게 했다.
미처 자라지 못한 날 어른으로 성장시켰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좋은 배우자의 존재는 여느 유능한 정신과 주치의 보다도 심리적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남편은 나에게 때론 아버지 역할로 때론 나의 신경안정제가 되어 내 옆에 있었다.
내가 그렇게 절망하던 그날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