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무덤에서 데이터를 구해내자
기업의 운영 상태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은 말 잘하는 직원이 아니라, 말 없는 데이터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데이터를 여전히 ‘보고서용 숫자’로만 다룬다. 생산팀은 수율표를, 영업팀은 매출표를, 품질팀은 불량률표를, 인사팀은 근태표를 만든다. 각 부서에는 엑셀 파일이 수십 개씩 쌓여 있지만, 이 숫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제의 불량률이 오늘의 고객 불만으로 이어졌는지, 고객의 반품 패턴이 내일의 생산계획에 반영되는지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데이터는 원래 조직의 언어이자 학습의 재료가 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여전히 '기록의 무덤' 속에 잠든 상태다. 데이터는 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꿰기 위해 존재한다. 쌓인 데이터가 서로 연결되어야 정보가 되고, 정보들이 엮여야 통찰(Insight)이 된다. 그리고 그 통찰이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데이터는 연결될 때 의미를 갖는다. 일자별·유통채널별 매출 데이터를 연결하면 ‘채널별 월간 판매실적’이라는 정보가 생겨난다. 이 정보를 고객 유입량, 구매 전환율(CVR), CS 접수, 재고 현황 등과 함께 분석하면 판매 부진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 그 통찰을 바탕으로 판촉 전략을 수정하고, 광고 효율을 개선하며, 생산 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는 기업의 맥박과 혈압처럼 조직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생체 신호다. 운영 탁월성을 갖춘 기업은 데이터를 가공해 정보와 통찰로 변환한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는 대시보드 형태의 신호등으로 만든다. 빨간불이 켜지면 즉시 대응하고, 초록불이 유지되면 시스템이 정상 작동 중임을 안다. 데이터가 ‘기록의 무덤’을 벗어나 살아 있는 언어로 흐르는 순간, 조직은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한다.
한 소비재 제조기업은 매일 오전 9시, 고객센터 VOC 데이터와 생산 불량 데이터를 함께 열람한다. “어제 생산된 제품 중 고객 불만이 제기된 품목이 있는가?” “문제의 원인은 포장 공정인가, 원자재인가?” 이 간단한 루틴만으로 3개월 만에 불량률이 28%에서 16%로 줄었다.
반면, 한 전자회사의 품질 데이터는 2년간 3TB 이상 쌓였지만 불량 원인별 분석이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의마다 품질팀, 생산팀, 영업팀이 각자 데이터를 들고 서로를 탓했다. 데이터는 충분했지만, 데이터가 꿰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매출은 서서히 하락했고 문제는 계속 반복되었다. 구슬도 꿰어야 보물이 되듯 데이터도 연결해야 통찰이 된다. 데이터를 연결하고, 그 안에서 원인과 패턴을 찾을 때 비로소 조직은 숫자 너머의 통찰을 얻게 된다.
O&O DD(Operational & Organizational Due Diligence, 조직과 운영 관점의 기업실사 또는 평가)의 관점에서 데이터는 기업의 현재를 보여주는 체온이며 맥박이다. 데이터가 부서 간에 어떻게 연결되고, 정보의 형태로 어떻게 가공되며, 대시보드에 어떤 신호등으로 표현되고 공유되는지를 살펴보면 그 회사의 운영 수준과 문화의 질을 동시에 알 수 있다.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은 곧 그 조직의 문화 수준이다. “이 문제는 왜 생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조직은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를 교정하고 성장한다. 반대로 “누가 잘못했는가?”로 끝나는 조직은 데이터를 처벌의 도구로만 쓴다.
투자자
1. 데이터가 단순히 ‘보고용’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실제 경영 의사결정에 사용되는가?
2. 경영진은 어떤 데이터 대시보드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가?
3. 데이터 관리의 주체가 IT팀인지, 아니면 전사적 협업체계로 작동하는가?
경영자
1. 우리 회사의 데이터 회의는 ‘결과 보고’인가, ‘문제 해결 회의’인가?
2. 각 부서의 데이터가 연결되어 실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있는가?
3.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정확성·시기성·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팀장
1. 우리 팀의 KPI는 숫자를 맞추는 목표인가, 원인을 찾는 학습 도구인가?
2. 팀원들이 데이터 입력을 ‘귀찮은 보고’가 아닌 ‘업무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는가?
3. 문제를 발견했을 때, 데이터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