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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Feb 02. 2022

사라진 대화를 복원하기

소크라테스에게 배우는 사라진 대화를 복원하는 법

I cannot teach anybody anything. I can only make them think.                                       - Socrates


구성원들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사무실에 파티션을 없애던 때가 있었습니다. 비대면 사회가 일상화된 지금은 회의실에서도 마음속 깊은 생각이나 중요한 의견은 메신저를 통해서 교환합니다. 재택근무는 대화를 통한 집단 창의성 발현과 일을 통한 코칭에서의 명백한 한계를 보완하지 못한 채 시행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유 없는 믿음과 무의식적 순응이 습관화되면서 집단의 문제해결력이나 창의성은 약화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대화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도전 목표를 함께 만들어 내며, 혁신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리더는 대화를 통해 팀을 이끌어야 합니다. 리더의 대화는 팀워크를 만듭니다.


인류사에서 대화에 가장 능했던 사람은 단연코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아고라를 매일같이 누비며 대화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무지의 지'를 일깨워 사람들 스스로 부끄러움(Elenchos)을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르고 있다 그리고 믿었던 것이 틀렸다'는 사람들의 깨달음은 변화와 실천을 이끌었습니다. 통상적인 철학자(Sophist)들이 언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대화의 목적으로 삼았다면 소크라테스는 진리(Logos)에 다가가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진리를 공론화하고 삶의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주장, 전제와 근거를 점검하면서 변증법적(Dialectic) 대화로 잘못된 옛 것을 새롭게 했습니다.




서로 공통점이 없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능력입니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소통을 통해 학습이 증진되어 더욱 큰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화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생각과 일상,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합니다. 사장과 사원의 대화이던,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이던 대화에 참석하는 사람은 서로 간에 동등한 권리와 진지함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동등함과 진지함의 기본 전제가 무너지면 대화는 일방적 지시나 갑질이 되고 언어의 유희로 변질됩니다.   


사람들이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닙니다. 상호 존중(Respect)과 인정(Recognize) 속에서 성과를 창출하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리더는 동등함과 진지함을 전제로 존중과 인정을 통해 구성원들과 공통의 기반(Common ground)에 굳건히 설 수 있는 대화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도 없고,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일일이 관리할 수도 없습니다. 팀워크를 통해서 구성원 개개인이 리더와 목표를 공유하면서 역할과 책임하에 움직여야 합니다. 리더의 대화는 팀워크의 신뢰를 형성하고 효율성과 효과성을 증진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수직적인 계층을 가진 조직에서 리더와 구성원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리더에게 큰 도전입니다. 구성원들이 리더와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리더를 '상사'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이 리더를 상사로 인식해야 하는 순간은 리더가 의사 결정할. 때, 사람과 일을 조직할 때,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할 때입니다. 그 이외의 순간은 동등한 협업(Co work, Cooperation)의 시간입니다. 리더가 동등한 협업의 순간을 만들지 못하면 구성원들은 어리석은 질문(Stupid question)에 대한 근심, 숙의에 대한 거부감, 시간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대화는 사라집니다.


사라진 대화를 복원하기 위한 리더의 감수성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힘들었던 수업이 있었습니다. 백발의 교수는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복사한 1달러짜리 지폐를 주셨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뒷면에 이름을 기록해 제출했고 참여점수(Participation)로 기록됩니다. 수업 참여를 높이기 위한 재미있는 방법이었지만,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질문이라도 진지하게 받아주고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1달러를 받기 위해 표의 각주에 있던 나라들의 관계에 대한 엉뚱한 질문을 했을 때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그 나라들이 표본이 된 이유를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바보 같은 질문도 항상 훌륭한 질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상하 위계가 철저합니다. 사무실이나 회의실 등 공간의 배치도 위계가 반영됩니다. 필자가 제조업의 대표이사로 일할 때 회의 탁자의 좌측 제일 끝 구석자리에 상징적으로 앉았습니다. 회의실 벽면에 칠판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원리나 아이디어 등을 누구든 칠판에 낙서하면서 설명하도록 권장했습니다. 앞쪽 중앙에 혼자 앉아 도리도리를 하면서 팀장들을 바라보면 팀장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업무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대표이사만 쳐다보게 됩니다.  대화와 숙의(Deliberation)를 촉진하기 위해 동등하고 편안한 심리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물리적 분위기도  조성하려 노력했습니다.

  

리더의 대화는 솔직하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실이나 감정을 왜곡하면 구성원들은 알아차리고, 결국은 리더를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모호한 표현이나 정의는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자원이 낭비됩니다. 리더의 방향성을 파악하기 위한 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면 대화는 비생산적이 됩니다. 리더가 일을 정의할 때는 명확한 '목적'을 제시해야 합니다. 목적에는 큰 그림에서 그 일을 해야 하는 전략적 의도와 달성해야 하는 시간적, 금전적 계량 목표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기안서나 기획서에 대해 대화해야 할 때 필자의 첫 번째 질문은 항상 '이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요?'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무엇이 다른가?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자기 성찰형 대화'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사업이나 조직의 구성원들은 '해도 안된다'는 패배주의 또는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오만함의 우물에 갇혀 있습니다. 리더가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조직원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싶지만 중요한 핵심 주제에는 입을 닫아 버립니다. 이 경우 리더는 좋은 스피커(Good speaker)가 되어 섣부르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의 좌뇌를 활성화시키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 리더는 문답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엘렌코스 대화법(elenchos)은 문답으로 가지고 있는 믿음이 틀릴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다.


추천 알고리즘이 작동되는 SNS상에서 대화는 양극단으로 수렴하게 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할 수 없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진리나 원칙을 찾기보다 나의 의견을 강화하여 상대를 이기기 위한 대화가 넘쳐납니다. 대화는 언어를 통해서 자신과 타인의 생각을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리더의 '우리 공론형 대화'는 구성원 개개인을 공동의 목표와 가치로 연결해야 합니다. 리더는 가치에 기반한 행동원칙과 조직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숙의와 협업의 대화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진실(Logos)을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공정한 절차와 실질적 참여로 형성된 공론은 구성원들의 변화와 실천을 담보하는 진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무지의 지(無知의知)'에 대한 깨달음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해결할 없는 문제를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과 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아포리아(Aporia)까지 대화를 이끌어 갑니다. 산파술이라고 일컫어지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우리가 흔히 '끝장 회의'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형식입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논증적 문답을 중심으로 한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옛 것을 대체합니다. 정반합의 '서로 변증법적 대화(Dialectic)'는 한계를 돌파하는 혁신의 아이디어를 낳게 됩니다. 변증법은 정적인 상태가 아닌 사물의 '운동원리'를 설명합니다. 혁신은 언제나 계속돼야 합니다.




대화는 어디로 갔을까? 메신저, 키오스크, 앱 등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전화로 문의하거나 주문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낍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상담원 역시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응대하고, 응답은 항상 규정과 규칙을 따릅니다. 사무실에서도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대화는 실종되고 기계적 정보전달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매개하는 대화,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서로 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대화는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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