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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Mar 22. 2022

우리 회의실은 수세식인가요?

Strong minds discuss ideas, average minds discuss events, weak minds discuss people.   

-Socrates


인류학자들에게 있어서 수세식 화장실은 문명 발달의 기준입니다.  유적지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발견하면 그 시대와 공간을 지배하던 문명이 발달되어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현대에도 화장실은 필수 불가결한 공간으로 청결함의 기준을 넘어서 공간을 조성하는 사람이나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화 수준의 척도로 여겨집니다. 조직 내에서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 화장실과 같은 의미를 가진 공간이 회의실(Meeting room or Conference room)이 아닐까요? 회의실의 물리적 환경과 회의 모습을 보면 조직을 지배하는 분위기, 더 나아가 문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협업적 조직 문화와 리더십 스타일의 척도가 바로 회의실입니다.




회의는 협업적 문제해결 과정


농경시대는 개인 능력의 합이 같이 일하는 팀의 능력이었습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화 시대에는 기계별 능력의 합이 곧 팀의 능력이었고, 사람들은 기계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치되었습니다. 이때까지 기업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상호 독립적이었고 상대적으로 단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지식이 풍부하고 경험 많은 개인이 문제해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개인과 조직, 일과 사람이 약한 고리로 무수하게 연결되어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문제의 복잡성이 커졌습니다.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해관계자들은 많아졌습니다. CEO나 전문가 한 사람의 고독한 결단으로는 복합문제(Complex challenge)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복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 다양한 생각이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된 공간이 회의실입니다. 자신의 의견표현하고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면서 나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참여자 간의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더 좋은 생각 즉, 집단지성으로 복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공유된 아디디어가 생겨납니다. 소통을 통해 협업적 문제해결이 이루어지고, 집단지성으로 탄생한 우리의 생각은 그것을 만들어 낸 참석자들에 의해 강력한 실행력을 담보받게 됩니다. 회의실에서의 권위는 직위나 직책에서 기인하지 않습니다. 협업적 문제해결을 촉진하는 논리와 이성에 근거합니다.


리더는 선택과 집중 즉, 의사결정에 의해 평가받습니다. 의사결정이란 받아들일 수 없는 해결책을 리더가 일부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 방안을 팀 전체가 찾아가는 것입니다. 리더의 일방적 지시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은 충분한 분석과 대화를 회피하고 동의에만 집중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는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위험하고 엉뚱한 대안들을 선택하는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의 위험도 높아지게 됩니다. 리더의 의사결정은 협업적 문제해결 과정 '숙의'를 거친 우리의 생각, '집단지성'의 산물이어야 합니다. 


수세식 회의실의 기본 조건


많은 경영자들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디지털 장비를 구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팀의 창의적인 문화를 독려하기 위해 회의실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스피어스(The Spheres)에는 4만여 그루의 식물 사이에 둥지 형태의 회의실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협력하면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혁신할 수 있는 독특한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리더를 중앙으로 좌우 직급 순으로 자리하는 회의실은 하드웨어가 아무리 뛰어나도 '대화와 토론'이 활성화될 수 없습니다. 회의실은 참석자들이 동등하고 서로에게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수 있는 자리 배치, 그리고 빔프로젝터, 보드와 같이 대화를 보조하는 기록 수단들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회의는 어젠다에 따라 일회성일 수도 정기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회의는 정보를 공유하고, 이슈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의 행동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회의의 목적이 달라져도 회의실에는 회의실만의 그라운드 룰(Ground rules)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라운드 룰은 곧 회의실에서 대화와 소통을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회의 주최자가 요청한 준비를 하고 참석하며, 서로 존중하면서 모두의 참여를 독려하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나 리더가 회의를 지배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입을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회의실은 사람과 생각을 서로 존중하게 하는 그라운드 룰이 지배하는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직장인들은 1주일에 평균 13시간 동안 회의를 하고, 한 달 평균 60개의 회의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39%는 회의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70%는 다른 일거리를 가지고 회의에 참석합니다. 20명으로 이루어진 팀에서 회의의 생산성이 15% 상승하면 팀에 다른 한 사람이 추가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생산성을 올린다는 것은 결국 회의의 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회의는 사실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사전 준비에서 팔로우업까지 과정을 관리하고, 회의 중에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자발적 참여와 강한 실행력을 이끌 수 있는 기술자, 퍼실리테이터가 필요합니다.


세계 최고의 EPC 회사 플로어(Fluor)의 회의 문화


필자가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운영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800억 규모의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세계 최고 EPC 회사 플로어(Fluor)를 방문할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회의실은 깔끔했고 사방의 벽은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누구든 마커를 들고 그림을 그리거나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좌석배치는 평등했고 상석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기초설계와 프로젝트 관리는 미국, 상세설계는 한국, 기자재 제작은 중국, 설치는 중동, 구매는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집니다. 플랜트 업은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면 큰 비용으로 전가됩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명확하게 의사소통하는 협업적 문제해결 과정을 통해 수조 원대의 프로젝트가 정해진 품질과 비용, 그리고 납기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입니다. 


암스테르담 지사 회의실은 정돈된 공간과 기록을 위한 도구들, 비대면 회의 시설 등 간결하지만 인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회의실 밖에는 음료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고, 흡연부스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을 취하면서도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회의실 벽면에는 ‘10 Tips, Intercultural Communication That’s how we excel’이라는 그라운드 룰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게 보고 실재 회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Verify mutual understanding(서로 이해한 부분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라!)’이라는 규칙입니다. 애매한 항목들은 미국과 인도 등 담당자들과 즉석 전화 회의를 통해 확인했고 명확해진 내용은 즉시 회의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플로어와의 회의를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회의의 목적과 구체적인 어젠다, 상세한 사전 숙제(?)들이 1달 전에 송부되었고 참석자와 시간계획을 조정한 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회의를 이끄는 실무자의 퍼실리테이션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논의된 내용은 즉시 '메시지(Message)+사실(Fact)'의 형태로 기록되었습니다. 문제해결 전략, 합의된 원칙 등 본질적 결정사항(Decision list), 추후 논의가 필요한 사항(Issue list), 담당자와 기한을 가지고 즉각적으로 실행되는 사항(Action list)으로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기록합니다. 사실 우리는 조금은 애매하게 의사소통하고, 조금은 각자의 필요에 맞게 해석하고, 문제가 벌어지면 그때 가서 해결하려고 하는 기록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로어의 퍼실리테이션과 회의록 문화는 구체적인 항목 하나하나가 구속력을 갖는 행동을 명확하게 담보합니다회의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플랜트 산업은 집단지성과 전문화된 분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팀워크의 상징적 표본입니다. 다양한 배경과 인식을 가진 구성원들이 수평적 협업을 통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합니다. 수조 원대의 프로젝트가 글로벌한 팀에 의해서 수행됩니다. 동등함과 진지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세식 회의실, 완벽한 소통과 철저한 기록을 기본으로 하는 협업적 회의문화가 플랜트 산업 경쟁력의 근간입니다.



* 사진출처: 제목 - Anastasia Shuraeva 님의 사진(출처: Pexels)

                   하단 - 필자가 플로어 암스테르담 회의실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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