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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Jun 04. 2023

액체조직에서 리더의 새로운 역할

팀워크의 모순과 리더십의 도전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식은 더 이상 머릿속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기계는 무한정으로 진화하고 있는 기억장치를 기반으로 무수한 대상과의 연결에 의해 발생하는 빅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배우고 판단하는 딥러닝을 시작한 지 오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고 그 상황을 분석하여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고, 많은 지식 중에서 유용한 것을 찾아내고 조합할 수 있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 중시되던 생산성이나 품질의 영역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연구개발, 상품개발처럼 특정한 부서가 고유의 기능으로 기업의 창조성 영역을 책임지고 있었다.  지금은 경영활동의 전 부문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상적 업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혁신의 기회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항상 접하던 대상과 문제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뷰자데(Vujade)가 중요한 능력이 되고 있다.


변화가 느리고 엄격한 위계와 질서가 지배하던 고체조직은 사라지고 있고 다양성과 갈등이 일상화된 액체조직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다양성이 커진 만큼 조직 내외부에서 갈등이 커지게 마련인데, 갈등을 관리하는 기술은 경험에 근거한 개인적 역량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성이 커지고, 또 다양한 의견의 표출이 자유로워진 액체조직에서 팀을 하나로 묶어내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고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리더에게 큰 도전이다.

 

변하지 않은 것


전통적으로 조직은 경영진, 중간관리자, 실무진의 3개 계층으로 나뉘어 있다.  경영진은  사명(Mission)이라고 불리는 조직이 추구하는 큰 방향을 제시하고, 중간 과정의  이정표(Vision)를 설정하는 리더의 역할을 한다.  리더는 분석적 사고를 통해 얻은 통찰력을 기반으로 조직원들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야 한다.  중간관리자는  이정표(Vision)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과제(Goal, Task & Work)로 만들어 추진하며, 그 과정을 관리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한다.  매니저는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한다.  실무진은 개인 간의 협업(Collaboration)을 지원하며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는 중간관리자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일을 완수하는 역할을 한다.


경영진(임원)은 근래에 들어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 COO(Chief Operating Officer, 최고운영책임자), CFO(Chief Finance Officer, 최고재무책임자), CSO(Chief Strategy Officer, 최고전략책임자), CMO(Chief Marketing Officer, 최고마케팅책임자) 등 기능적으로 분화하면서 역할과 책임에 있어서 전문성이 강화되고 있다.  실무진들도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위 ‘능력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중간관리자들은 실무에서 조금 멀어졌다는 이유로 경제위기를 거칠 때마다 구조조정의 1순위가 되곤 했다.  일상적 실무 업무가 아닌 문제해결, 사업관리 등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역할 그리고 갈등을 관리하고 조직원들의 협업을 만들어내는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역할이 암묵지(Tacit Knowledge)로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최근 우리 기업은 수평적 조직을 외치면서 중간관리자도 실무를 하고, 프로젝트에 따라서는 팀원들도 퍼실리테이터가 되고, 경영진도 매니저가 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반면에 단기적으로 실적을 평가받는 전문경영인과 주주경영 강화 흐름 그리고 펀드에 의한 경영이 늘어나면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팀장, 즉 중간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과거보다 더 적은 인력, 자금, 시간을 가지고 더 새로운 방식으로 더 빨리 일을 완성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개인의 실무역량이나 매니저로서 전통적인 관리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무리 똘똘 뭉쳐진 팀워크를 가지고 있어도 일을 이루어 내기가 쉽지 않다.


 

변해야 하는 것


필자의 25년 직장생활 동안 사무실의 모습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변화의 방향을 차치하고라도 변화는 더 빨라졌고, 더 복잡해졌고, 더 넓어졌다.  이 변화를 잘 따라간 것은 책상 위를 지키고 있는 컴퓨터의 속도와 메모리지만, 중간관리자의 역량은 크게 진보된 것이 없어 보인다.  경영진의 역할이 전문화되고, 실무진의 배경과 지식의 다양성이 커짐에 따라 역할의 복잡성은 커졌지만 중간관리자들은 아직도 기술(Toolkit)보다는 자질(Personality)로 승부하는 전통적인 리더십으로 대처하고 있다.  경영진에 대한 충성이 아직도 중요해 보이지만 이제 역량과 성과로 입증되지 않는 충성은 배격되기 시작했다.  실무진에게 지시와 통제를 통해 복종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어떻게 자발적 참여와 헌신(Commitment)을 이끌어 내고 지속(Continuity)할 것인지가 도전과제가 되었다.

 

이제 중간관리자는 문제에 대한 재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문제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언제 그 일이 끝나는가?’라는 꼰대 같은 질문보다는 ‘이 일이 우리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그 과제와 일에 대해 소통하며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중간관리자들은 ‘파이팅!’을 외치면서 구성원들에게 지시와 통제를 통해서 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강화되고 더욱 복잡해진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는 현재의 액체조직에서는 협상과 갈등관리, 퍼실리테이션 등 구체적인 문제해결 기술(Toolkit)을 가진 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리더는 구성원들이 과제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팀원들이 과제와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계형성이나 관계 개선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등 구성원들의 협업을 전문적(Professional)으로 지원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액체조직에서 조직원들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소통을 통해서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경영진과 중간관리자들은 분석적 사고 능력을 가진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문제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재해석과 재구성 역량을 가진 리더로서, 그리고 소통을 통해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고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는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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