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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Jun 25. 2023

떼쓰는 사람을 상대하는 협상의 기술

떼쓰는 사람과 상황에 대한 이해, 단호함,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기 

협상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떠나서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바로 격해진 감정과 떼쓰는 협상 스타일이다.  격해진 감정은 사과나 배려 그리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을 통해서 완화될 수 있지만, 무조건 떼를 쓰는 사람은 이해관계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말을 주고받는 소통 자체가 어려워 협상에 애를 먹게 된다.  ‘떼쓰다'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부당한 일을 해 줄 것을 억지로 요구하거나 고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적대적 협상에서 많이 발생한다.  부당한 요구를 고집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협상을 분배적 협상으로 여기고 정해진 파이 속에 자신의 몫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일방이 논리에 어긋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되면 협상에 많은 시간과 돈이 낭비되고,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관계는 파탄으로 이를 수 있다.  


1,000원을 지불하고 당신의 제품을 산 고객이 제품 불량으로 인해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10,000,000원의 보상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기술은 합당한 보상규모를 객관적 기준에 의해 산정하고 당사자에게 수용이 불가할 경우 중재나 소송으로 가게 된다는 최후통첩을 하는 것이다.  보상규모는 공정성을 담보한 제삼자가 산정하게 하거나, 변호사를 통해 판례 등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산정해야 한다.  이 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당신이 현재의 대안이나 보상이 객관적으로 산정되어 가장 공정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더 이상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지하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좀 더 타당하고 사리에 맞게 자신의 요구를 수정하게 된다.  상대방이 나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상대방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나의 영향력을 강화시킨다.


두 번째 기술은 협상 상대방의 의사결정 구조를 파악하여 선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협상에서 떼쓰기를 하는 사람이 실재 권한을 위임받아 의사결정을 행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1차적으로 높은 요구 수준을 제시하고 정보탐색을 한 후에 뒤로 빠질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후자라면 의연하게 대응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사람과 역할 그리고 이해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서 물밑 채널을 가동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세 번째 기술은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여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는 전략적인 측면보다 협상 당사자 개인의 특성 때문에 떼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협상 당사자의 소통방식과 특성을 인정하고 감정을 배제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소통으로 협상을 진전시켜야 한다.


일전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보면 북한은 볼턴의 떼쓰기에 대해 감정적 대응을 함으로써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제에 대응하기보다 사람에 대응한 것이다.  볼턴은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반대파, 강경파로서 생화학무기 폐기, 선조치 후보상 등 가능한 모든 요구를 쏟아 냈다.  볼턴 보좌관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북한은 감정보다는 객관적 기준이나 원칙을 앞세워 비판하거나, 직접 대응보다 물밑 실무협상에서 협상 실무 담당자들과 문제를 토론했어야 했다.  펜스 부통령의 경고에 대해서도 직접 지목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상호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계적 폐기, 단계적 보상의 합리성을 국제사회와 주변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설득시키는 전략이 필요했다.  


상대방의 요구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이나 원칙을 제시하기보다 사람에 대해 감정적 공격을 함으로써 미국의 입장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정상회담의 의사결정권자는 양국의 최고 지도자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강성이라도 참모들이 북한보다 상대적으로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간과하고 볼턴 보좌관이나 펜스 부통령의 요구조건이 아닌 개인을 공격한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정상회담을 반대하고 북한을 믿을 수 없는 국가라고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백악관 참모들에게 제공한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일련의 적대적인 인신공격을 유리한 입지를 굳히기 위한 떼쓰기 전략이라고 여긴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을 수정하거나 간접적으로 보좌관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여러 차례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는데도 북한은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를 밀착하며 미국과 한국에 압박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펜스 부통령에 대한 인식공격이 있었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당일 공식서한을 통해 일방적으로 협상취소를 통보했고, 북한은 담화를 통해 8시간 만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북한이 원인을 제공했음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북한이 태도를 바꾸면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북한은 담화에서 그간의 자신들의 입장을 유화적으로 해명하면서, 공정하고 온당한 요구 수준을 가지고 협상테이블로 돌아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긴급 정상회담을 통해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자신의 BATNA를 실행하면서 객관적 기준과 최후통첩으로 협상에 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대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협상의 대가 트럼프 대통령과 한 번의 시련을 통해 성숙해진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협상을 개최해야 하는 두 정상의 이해관계.  협상은 재개되었다.  이해관계를 조정해 ‘포괄적 이면서 단계적인 핵폐기와 보상’의 창의적 대안을 만들어 내는 협상의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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