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경영활동에는 원인규명형(WHY) 문제나 해결책 추구형(HOW) 문제 이외에 마련된 대안들에 대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의사결정형의 문제들이 존재한다. 개인이나 조직이 한정된 자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인 시대에 신사업이나 중장기 전략, 내외부 갈등관리 등에 있어서 기업의 전략적 선택은 경영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의사결정은 경영자들이나 리더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가 사무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보고서도 결국은 경영자나 매니저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나 SK의 최고 경영진이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보고 반도체 사업에 투자를 한 것이나, 조직의 매니저들이 신제품 아이디어와 마케팅 계획을 선택하는 것 모두 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신속성과 정확성의 양면성, 그리고 독단적 결정과 집단적 결정의 딜레마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정확성을 중시하게 되면 많은 시간 다양한 분석을 통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인수자가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 ‘재면,' 인수 가격이 올라가거나 다른 경쟁자가 인수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우 인수합병 과정에서 최고 경영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기본적인 데이터와 시장성을 바탕으로 빠르고 직관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기회를 선점하고, 실행에 좀 더 매진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선구안이 뛰어난 사람은 당연히 출루율이 높고, 출루율이 높은 선수는 득점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안에 사업과 조직을 턴어라운드시켜야 하는 리더들에게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실행은 필수적인 성공요소이다.
의사결정은 선택을 하는 것이고, 실행을 통해 집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의사결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실행력도 중요하다. 아무리 옳은 의사결정이라도 조직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실행과정에서 선택된 대안이 가지고 있었던 장점이 100% 발휘되지 못한다. 반면 차선의 대안을 선택했어도 조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실행한다면 얼마든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조직원들이 경영자가 매니저가 한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결정한 것을 실행한다고 느낄 수 있다면 개개인의 목표에 대한 몰입, 결과와 과정에 대한 책임의식도 높아지게 된다.
의사결정은 미래라는 시점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보고서를 만들어 다양한 관점에서 장단점을 분석하는 것도 결국은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 성공 확률을 평가하기 위한 과정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과거를 반추하여 예측하거나, 유사 사례를 통해서 의사결정 기준을 찾아내거나, 내부에서 분석된 불충분한 근거자료를 근거로 확률을 평가한다. 하지만 많은 경영자나 학자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내부적인 분석자료 이외에도 외부적인 정보원을 활용하여 판단할 것을 권하고 있다. 내부적인 분석은 전략적 일관성과 매몰비용으로 인해 관점이 한정되기 쉽고 부서 간의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될 여지도 존재한다.
미국에서 흑인 최초의 합동참모본부장을 지낸 콜린파월은 정보로 판단한 성공 가능성이 40~70% 사이에 들면 직관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성공가능성이 40% 미만이라면 선택하지 말아야 하고, 70~100% 구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늦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40~70%의 구간(이하 ‘4070 변속구간’)에서 경영자나 매니저는 직관과 지성을 결합하여 생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 외로운 선택의 구간에서 매니저의 직관에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the person who knows’이다.
'the person who knows' 그들은 누구인가?
문제를 해결하는 수가 뛰어난 사람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수 또는 도사(Guru)라고 부른다. 그들은 반복되는 문제해결을 통해 한계를 돌파하고 지성과 감성을 결합하여 창의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무가 우거진 숲에 있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문제를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다. 4070 변속구간에서 무림의 고수들을 만나서 원 포인트 레슨을 받는 것만으로도 의사결정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무림의 고수들은 중수나 하수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어떤 도구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까? 하수, 중수, 고수의 문제해결 방법을 살펴보자!
가장 기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은 오감, 즉 감각이나 느낌만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은 감정적이며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하수들이다. 열정적이지만 논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보다는 사람을 보고 판단하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는 피상적인 현상을 제거하는 것에 노력하는 그룹이다. 최근 인공지능을 채택한 가전제품들이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작동되는 것도 일종의 오감에 의한 문제해결이다.
오감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이 육감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왜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는 것 같은 느낌(Feeling of knowing)을 대안 선택에 활용한다. 이들은 문제해결을 논리적인 과정으로 여기기보다는 일종의 도박 같은 성격으로 파악하고 운에 기대고자 한다. 육감에 의존하여 선택한 대안이 시대와 상황의 변화와 맞아떨어지고, 강한 실행력이 뒷받침되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창업이나 신사업 진출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매니저의 육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유다.
다음 그룹은 업력을 바탕으로 경험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편의상 업력과 경험을 칠감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문제의 패턴을 이해하고 있어(Knowing of Patterning)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경험에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자연스럽게 도출한다. 칠감에 의한 문제해결은 창업 이후 기업이 성장기를 거치면서 경영자가 매니저가 일상적인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육감이나 칠감은 중수의 문제해결 툴이다.
고수는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고(Understanding of Interests),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편의상 전략적 직관을 팔감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팔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고수들은 상황 이해력이 뛰어나 상황에 맞는 그래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대안들을 전략적 직관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대안도 주변 환경이나 구조속에 존재하는 주체들의 이해관계와 피드백 관계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과 상황이 얽힌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하여 잘 해결할 수 있는 고수다.
마지막으로 보편의 원칙과 가치(편의상 구감이라고 칭한다)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철학적 직관의 소유자, 무림의 고수, 도사(Guru)들이다. 그들은 통섭적인 사고로 다종다양의 문제를 중요한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판단한다. 무엇이 중요한 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업에서 한계를 돌파하고 어떻게 하면 고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가장 잘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산업이나 업종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사결정의 기준, 보편의 가치를 체득하고 있다.
이제 턴어라운드 리더들이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세 부류의 고수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첫 번째 그룹은 현장의 고수들이다. 현장은 문제와 해결책의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칠감의 고수들이 많다. 현장에서 현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면서 고수들과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우리의 사고가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딛고 서 있을 수 있게 만든다. 사무실과 현장이 괴리되면 선택되는 대안들이 실행 현장의 현실에 맞지 않아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필자가 생활용품 제조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생산팀에서 제시된 생산성 향상 대책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파악하기 위해 생산현장에서 일정기간 작업자들과 함께 근무했다. 이 시간 동안 현장의 고수들과 직접 작업을 같이하고 면담을 진행하면서 작업자들의 작업강도, 공정상의 문제, 기계의 유지보수, 생산 품목 변경 등 생산성 저하의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선택하여 단시간 내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두 번째 그룹은 고객과 혁신적인 선도 사용자다. 제품을 개선하고 신제품을 출시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경영활동이다. 이 과정은 결국 고객이 우리 제품에 대해 느끼는 불편, 불만, 불안 요소(Pain Point)를 찾아내고 고객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기술을 잘 모르는 고객의 생각’은 단순한 참고 의견이 되어 기술자적인 관점에서 제품개발이 진행되거나, 매니저의 독단 또는 직관에 의해 신제품의 컨셉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전형적인 추격자(Fast Follower)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MIT 슬로안 경영대학의 에릭 폰 히펠 교수가 3M과 공동개발한 신제품 개발 방법론인 선도사용자조사(Lead User Research)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에릭 교수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시장에 어떤 제품이 나오기 이전에 유사한 속성을 지닌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선도적 사용자나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통찰력에서 제품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자동차의 ABS 브레이크도 비행기 제동 장치에서 출발되었다. 비행기에 있어 제동장치는 착륙과정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제동력을 급격하게 높여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 제조회사의 브레이킹에 대한 통찰력이나 기술적인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우리 제품이 강화하고자 하는 속성을 관찰, 인터뷰, 설문과 같은 고객조사로 밝혀내고, 그 방법을 선도적 사용자나 기업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고객 조사의 결론이 제동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면, 제동력에 있어 혁신적인 선도사용자를 찾아서 통찰력을 배우는 것이다. 제동력의 선도적 사용자라면 비행기 제동시스템 설계자, 항공모함의 전투기 이착륙 시스템 설계자, 타이어 연구자, 스포츠카 현장 정비사, 알파인 스키 선수, 컬링선수 등 제동력이 해당 직업의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제동력 선도사용자를 찾아서 통찰력을 배우는 것이다. 이들에게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배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당신도 철학적 직관, 구감을 활용하는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다.
마지막은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갈등관리사, 변리사, 공인 퍼실리테이터와 같은 전문가 그룹이다. 이들은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내용전문가(Contents Expert)이면서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전문가(Process Expert)이다. 이들은 전략적 직관, 팔감을 활용하여 구조와 맥락에 맞는 최적의 대안과 프로세스를 제시해 줄 수 있다. 특히 갈등상황에서는 초기에 외부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의 악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상황이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외부전문가를 활용하는 것에 익숙한데, 이 경우 관련 비용이나 시간적인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선택해야 하는 해결책이나 문제의 원인이 법률적인 문제 등 전문가의 자문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되면 먼저 자문을 얻고 전략적인 판단에 들어가야 한다.
신라의 고승 의상은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보물 같은 비가 허공에 가득한데, 중생들은 저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그것을 얻는다'고 하였다.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연결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 ‘the person who knows’를 찾는 노력이 내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노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