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과 요약 그리고 바꾸어 말하기(재진술)의 달인!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는 2016과 2018년에 국내기업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기업의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진단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잦은 야근, 비생산적인 회의, 과도한 보고 등은 2년여 동안 다소 개선이 있었지만 아직도 우리 기업문화의 고질적 병폐로 인식되고 있다. 2016년 조사결과에서는 회의문화에 대해서 응답자들은 100점 만점에 45점이라는 낙제점을 주고 있었다. ‘회의’에 대해서 ‘자유로움, 창조'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에 대한 연상은 고작 8.9%에 그쳤고, ‘상명하달, 강압적, 불필요함, 결론 없음' 등 부정적 단어에 대한 연상은 91.1%에 이르렀다.
조사 대상자들은 일주일 동안 평균 3.7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으며, 그중 절반인 1.8회 정도는 불필요한 회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사들은 발언을 독점하고 있고(61.6%), 직원들은 가급적 침묵하거나(39.0%) 상사의견에 동조하거나(17.1%) 별다른 고민 없이 타인의 의견에 묻어가고 있다(12.8%)고 답변했다. 또한 절반 이상의 회의(55.2%)는 명확한 결론 없이 끝난다고 한다. 지난 1주일 약 3.7회의 회의 중 1.2회에서는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고, 발언하는 경우에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29% 정도만 이야기했다고 하니 도대체 왜 회의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재미없고 피곤한 회의를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회의라는 과정은 언뜻 매우 편리하고 쉬워 보이지만
체계적인 준비와 전문적인 회의진행 스킬,
지속적 팔로업을 통한 실행과의 연결고리가 필요한 정교한 기술이다.
퍼실리테이션 스킬을 가진 사람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조직 내에 축적되면
경쟁력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다.
400미터 계주경기가 바통터치 구간에서 각 개인이 최고 속도에 이르렀을 때 최고 기록이 나오는 것처럼 전원참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복잡 다변하는 시대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매니저가 회의를 주도하면서 본인의 통찰력(Insight)에 의존하여 의사결정하는 것은 한계가 존재한다. 오히려 조직개발의 출발점으로 집단지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회의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전문적인 퍼실리테이션 스킬을 훈련한 매니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가진 매니저는 회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을 조직과 목표에 대해 몰입으로 이끌고, 성과를 창출하는 문화를 만든다.
우리나라 최고의 퍼실리테이터는 ‘100분 토론'의 전설 JTBC 손석희 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진행했던 토론회나 인터뷰를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로서 그의 장점들을 살펴보았다.
JTBC 손석희 사장은 10년 이상 가장 존경받는 언론인으로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언론은 균형, 공정, 팩트,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언론인으로서의 소신과 사명을 실천하는 그에게서 팩트와 공정함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 그가 출장을 가서 뉴스 진행을 못하게 되자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이 큰 폭으로 하락하기도 했다. 그가 진행하는 대선 후보자 토론회나 신년 토론은 종편으로서 그리고 토론 프로그램으로서 좀처럼 기록하기 힘든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토론의 달인으로서 손석희 사장의 말하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 손석희 님의 인터뷰와 토론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참석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쉽고 선명한 언어로 이끌어 내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손석희 사장은 기자로서 사안에 대한 통찰력뿐만 아니라 토론을 진행하는 프로세스 전문가(Process Expert)로서도 매우 훌륭한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지니고 있다. 퍼실리테이션은 ‘촉진하다, 용이하게 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넓은 의미로는 사람들을 지원하여 일을 완수하게끔 하는 활동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과제나 일에 대해 자발적으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협업적 문제해결을 통해서 실행력을 배가하며, 필요한 관계의 형성과 악화된 관계의 개선을 지원하여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조직원들을 이끌고 목표를 달성하는 한 조직의 매니저 역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로는 전문적인 스킬을 가지고 구조화된 프로세스를 따라 회의나 워크숍의 진행을 중립적으로 리드하는 활동을 이야기한다. 손석희 사장이 인터뷰나 토론을 진행할 때도 퍼실리테이션의 요소들이 적용되고 있다.
사전에 시청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에 대해 구조적인 토론 절차와 규칙을 만든다. 이에 대해 가장 식견이 있는 사람을 토론자로 초청하고 테이블 배치 등을 통해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토론에 임해서는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참석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의견을 교류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주제를 벗어났을 때나 감정적 대립으로 치달을 때 퍼실리테이터의 권한을 가지고 중재한다.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퍼실리테이션 역량은 참석자들을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토론에 기여해야 하는 지를 안다는 것이다.
그는 참석자들이 새로운 문제에 대해 토론을 시작할 때 배경설명을 통해 관련된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대립되는 관점들도 소개한다. 이후 어느 일방에게 문제제기를 청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양측이 자유롭게 대립되는 입장을 표명하고 서로의 논리를 주장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러한 확산적 사고의 과정에서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증거가 제시되면서 자연스럽게 논점에 대한 판단 근거도 확장된다. 양측의 감정적 대립이 발생하거나, 주장과 사실 사이에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지거나, 어느 일방이 시간을 독점하지 않는다면 퍼실리테이터의 간섭은 없다.
다만 다양한 관점이 충분히 제시되었거나 논쟁이 반복되면서 충돌의 양상으로 번지면 적극적 간섭을 통해 양측의 주장과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요약을 한다. 그리고는 추가 질문을 통해서 토론의 핵심쟁점을 다시 한번 부각한다. 마지막 질문은 양측의 입장을 정해진 시간 내에 명확히 재진술하게 하게 함으로써 해당 주제에 대한 논의를 정리한다. 그는 요약, 입증(Proving) 질문, 연결과 결합을 통해 참석자들의 관점을 명확하게 한다. 발표자들의 주장과 뒷받침하는 팩트를 분리하여 요약하고, 때로 팩트가 논란이 있거나 검증되지 않았으면 연결된 질문이나 별도의 검증이 필요함을 분명히 한다.
요약의 과정에서는 주장이 아닌 팩트를 기반으로 바꾸어 말하기, 예로 들기, 보충질문, 입증 질문 등을 통해서 토론의 이정표를 선명하게 한다. 다양한 관점들을 연결하고 결합하여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대립하는 부분과 상통하는 부분을 정리한다. 때론 이러한 연결과 결합을 바탕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토론에 새로운 관점의 질문을 추가하여 토론의 방향을 전환시키기도 한다. 또한 정해진 주제와 순서에 따라가기보다는 토론의 목적에 충실하면서 토론의 흐름을 유동적으로 만들어 낸다. 주제에 할당된 개별 시간에 얽매이기보다 쟁점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추가시간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퍼실리테이터에 의해서 토론 중간중간에 생기게 되는 이정표는 참석자들에게 토론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 긴장을 유도한다. 그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 상반되는 주장도 객관적이고 개별적으로 인정하고, 참석자 개개인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얼굴을 맞대고 지냈던 사람과 인터뷰할 때 불편함이 싫어 ‘인맥 만들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질문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논리만을 반복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는 일부 정치인들과의 인터뷰에서 끝까지 감정을 억제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답변하고 질문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퍼실리테이터의 감정이나 호불호나 개입되면 토론의 중립성이 쉽게 훼손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참석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전적 의미에서 중립이란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킴’이다. 토론 중에 중립은 의견이 대립하거나 다양한 의견이 나올 때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대립하는 두 관점 또는 다양한 관점 그 자체를 치우치지 않고 요약, 기록하는 것이다. 특정한 내용에 대해서 찬성이나 반대를 표하지 않고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토론에서 퍼실리테이터가 내용에 대해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거나, 내용에 대해 판단을 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 가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토론의 공정성이 훼손되면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은 급격히 줄어들고, 심지어 아무리 좋은 해결방안이 나왔더라도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실행단계에서 참석자들의 헌신(Committment)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퍼실리테이터의 공정성은 토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결론이 필요한 회의라면 논점에 대한 충분한 숙의가 이루어진 후에 공동의 의사결정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는 프로세스 전문가(Process Expert)로서 참석자들에게 회의 목적에 대해 상기시키고, 프로세스를 가이드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단호하게 개입을 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치게 늘어진다던가, 토론이 주제를 벗어났거나, 빅 마우스가 토론을 지배하거나 하면 단호하게 개입하여 그룹의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토론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질문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독려할 수도 있다. 퍼실리테이터는 그룹 다이내믹스를 통해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면서 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용적 측면에서는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 프로세스 가이드 측면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토론회에서 그가 보여주는 오프닝과 클로징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프닝에서는 보이는 배경설명은 토론의 목적과 주제를 객관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정교하게 준비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토론 방식이나 규칙, 순서,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설명한다. 단정한 외모, 똑소리 나는 말투에서 나오는 아이스브레이킹 멘트도 그답다. 논점에 대해 일방의 문제제기를 요청하면서 시작되는 토론은 참석자나 시청자 모두를 한 곳으로 불러 모은다.
많은 경우 시간에 떠밀려 클로징을 하지만 서두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토론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면서, 대립되는 의견을 요약하고,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토론의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창조적 갈등과 토론의 중요성이 퍼실리테이터 손석희 님에 의해 다시 한번 부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