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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Jul 05. 2021

임신하니 남편이 싫어진다

임신해서 서러운 순간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한테 아기 낳고 나니 뭐가 가장 힘드냐고 물어봤다.


"육아? 모유수유? 다 힘든데, 남편을 안 미워하는 게 제일 힘들어. 숨 쉬는 것만 봐도 짜증나."




아기를 갖기 전만 해도,

남편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 솟아나 있던 상태였다.


오랜 기간 아이 갖기를 망설였는데도 묵묵히 기다려주고, 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던 남편.

때로는 부딪쳤지만, 남편이 나에게 애틋함을 가지고 있던 만큼 나도 그랬고.

가끔 고지식한 면 때문에 속을 끓이긴 했어도 나름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아기를 가져도 되겠다, 정말 가족이 되어도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서 아기도 가졌건만!!


임신하니 남편이 너무 싫어진다.


남편이 심하게 아토피가 있기도 했고, 나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것이 걸려 임신 초기부터 되도록이면 탄산음료나 인스턴트를 먹지 않았다. 불면증이 심해 커피도 입에 안 댔고, 남들 다 먹는다는 초밥, 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TV에 자체적으로 금지한 음식들이 나올 때마다 같이 침을 꼴깍 삼키고, 지나가다 향긋한 커피 냄새를 맡을 때면 카페에 앉아서 방금 뽑은 커피 한잔을 꼭 먹고 싶다. 날이 무더워 입맛이 잃을 때면 새콤한 초장에 회 한 접시를 얼마나 먹고 싶던지.


주변 남편들을 보면, 부인이 그렇게 괴롭게 음식을 참으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먹어'라든가, '우리 부인 너무 고생한다. 내가  잘할게'라고 한다던데,  남편은 '그래서 나도  먹잖아'라고 하질 않나. 어느 날은 커피가 정말 먹고 싶어서 디카페인이라도 먹을까 말만 꺼냈는데, 정색을 하면서 '커피는 안돼! 태아한테  아! 너 왜 그래?' 하며 무안을 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정말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 진다.


호르몬의 농간인진 몰라도, 그런 말을 들으니 이 인간은 아기가 잘못되면 내 탓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서러워졌다. 그래서 이제부터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먹으려고 한다. 나중에 날 탓한다고 해도, 안 먹고 서러운 소리 듣는 거보다 그냥 먹고 듣는 게 낫겠다.


갑자기 몸무게가 늘어서 속상해진 나를 보고도. '거봐.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먹는다니까.'라고 면박 아닌 면박을  일도 있었다. 나중에 내가 울고불고 화를  후에야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그래도 괴로운 사람한테 공감능력 떨어지는 발언을 하는 남편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태교도 혹은 육아서도. 나는 나름대로 해야 한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읽어보고 찾아보면서 남편한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는 하지 않고.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애는 잘할 거야'하는 무한한 믿음!


저거 저거 결혼하기 전에도 이런  가지고 싸운다더라 하면서 대화  하자고 하면 '아니야 우린  잘할 거야' 하다가 신혼 초에 대박 많이 싸운 거 기억 안 나는지! 뭐든 닥쳐야 하고, 그전까지 손 놓고 게으름 부리는  릇! 아기가 생겨도 똑같은걸 보니 한심하다. 이렇게  놓고 있다가 결국 나중에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사람인척 힘들어하는 꼴을  생각을 하니 'ㅉㅉㅉ,  인간을 어떻게 믿고 애를 키우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다가 서로  소리를 내던 , 갑자기 배가 뭉쳐서 나는  자리를 떠야만 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전투력 충만했던 나도 눈물부터 나고, 너무 지치고, 아기도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예전엔 서로  감정이 상했는지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하곤 했는데 아기가 생기니 그런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길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힘이 들었다. 그런 아내를 보고도  분에  이겨 씩씩거리는 꼴을 보니, 저런 쪼잔한 사내와 같이 사는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  생각하면서 밤새 울었다. 남편이 새벽에 미안하다고 울며 사과하고, 앞으로는  뜻을 헤아리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상해버린 마음 때문에 한동안 남편의 얼굴조차 보기 싫었다.


물론 남편도 나름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


아빠가 된다는 게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감은 몰려오는데 아직 준비가   자기 자신이 괴로울 수도 있겠고. 씩씩했던 와이프가 갑자기 징징이로 변해서,  하나 못하면 울고불고, 이해도 안 해주고, 감정도 왔다 갔다 하니 힘들겠지. 직장에서도 짜증 나는 일이 많은데 집에 오면 아내 기분 살피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잡다구리 한 집안일도 자기 몫이니.


그런 남편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내 몸의 변화와 불편은 오로지 나의 몫이고.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준비도 나의 몫,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고민도 나의 몫인데 이전보다 집안일 조금 더 하고, 예민한 나한테 조금 더 맞춰주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일이라면 애라도 같이 만들지나 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지도교수님이 ‘임신이란 정말 외로운 일’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난다. 아무리 남편이 같이 아이를 키우고, 노력한다고 해도. 여자의 몸의 변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마주치는 여러 고민들도 세심하게 신경 쓸 수는 없겠지. 물론 여자도 남자를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겠고, 남자들이 가진 가장의 무게도 무게겠지만, 아이의 문제에서 누가 더 많이 고민하느냐를 따진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선 아직까지 엄마 쪽이지 않을까.


휴. 앞으로 이 외로운 일을 이 미덥지 않은 인간과 함께 하려니 아득하기만 하다.


진짜 미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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