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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Aug 21. 2021

시간아 제발 멈추어다오

벌써 임신 후기라니!! (1)

임신 후기(29주~아기 낳기 전)


수능이 100일 남았을 때, 으아 정리 하나도 안됐는데 언제 이거밖에 안 남았냐... 그래도 100일 안에 뭐든 다 할 수 있어!! 했었는데. 웬걸.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눈 감았다 뜨면 막 한 달 남고, 일주일 남고, 하루 남고. 매일 디데이를 보며 숨이 막히고, 공부는 공부대로 잘 안 됐었는데. 임신 후기가 딱 그런 느낌이다. 얼마 전 어플에서 100일 남은 걸 막 확인한 거 같은데 벌써 40일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말 그대로 훅훅 지나간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요즘엔 임신 초기 생각이 많이 난다. 그때 세웠던 조그만 계획들ㅋㅋㅋㅋ. 세우면서도 못 지킬걸 알았지만 역시나! 나란 사람이란... 정말 시간을 돌리고 싶다. 시간을 돌린다면 나를 위한 공부도, 아기를 위한 태교도 좀 더 열심히 했을 텐데. 돌아보니 혼자 빈둥거리며 넷플릭스를 본 것뿐이다. 그래도 아기 낳으면 티비도 제대로 못 보고, 빈둥거리지도 못한다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임신 초기나 중기 때는 갑자기 증가한 호르몬 탓인지 소용돌이치는 감정 때문에 모든 게 짜증났다. 남편도 싫고, 배 나오는 것도 힘들고, 온갖게 예민했던 초예민보스 상태였다면 임신 후기는 많이 불편하지만 임신상태 적응 + 엄마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발산하는 정도가 줄어들었다. 물론 나의 요동치는 감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내 감정 변화에 대해 좀 덜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임신 후기에는 앞선 시기와 다른 신체변화가 찾아온다. 그것도 아주 힘든!!


내가 겪은 임신 후기 변화


1. 무더위와 기초체온 상승의 끔찍한 콜라보레이션


예정일이 가을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임신 후기를 무더위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에는 그게 뭐 어때서. 봄은 봄이오, 여름은 여름이오... 사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이치이거늘...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몇십 년 만에 빨리 시작됐다던 무더위와 지구온난화는 안 그래도 기초체온이 높은 임산부를 정말 지치게 만들었다. 원래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이었는데, 정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피부에 송글송글 맺혔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머리 말리는 동안 막 땀이 나서 목 뒤랑 등 뒤가 축축해지고. 잠을 잘 때도 가슴, 배, 무릎 뒤, 살이 접히는 부분에서 땀이 하도 많이 나서 수건을 옆에 두고 계속 닦아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니까 나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에 여러 번 샤워를 하고, 옷을 몇 번을 갈아입고, 몇 번이나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지(+이불 빨래까지!!). 안 그래도 배가 무거워져 집안일 하기가 더 힘들었는데, 입을 옷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면 되지! 그렇다. 에어컨을 켜면 된다, 하지만 의외로 온도조절은 쉽지 않았다. 너무 세게 틀어놓으면 춥고, 그렇다고 약하게 틀어놓으면 덥고.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다가 나오는 전기세도 걱정이 되었다. 임산부란 이유로 나의 에어컨 사용은 매우 자유로웠지만 이런 경제적인걸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정온도를 맞추는 게 참 어려웠다. 에어컨 + 선풍기 + 손선풍기 여러 가지 도구들이 내가 생활할 수 있는 적정온도를 맞추는 데 사용되었다.


이렇게 더우면 가장 힘든 게 운동하는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고 나서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조금이라도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면 땀이 줄줄 나서 에어컨 앞에 서있어야 할 판인데 찜통 같은 더위가 도사리는 거리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 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지! 거기다 마스크까지 껴야 하니 정말 고역이었다. 일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도록 집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나가긴 나갔는데, 한번 나갔다 오면 그날 입은 옷부터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쇼핑몰과 같은 실내를 돌아다녔다. 그런 곳은 시원하기도 하고, 주차도 가능하니까 기분전환도 되지 않을까 싶어 종종 나갔지만. 갑자기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강제 집콕행… 내 생애 정말 힘든 여름 나기였다.  


2. 숨... 숨이 막힌다. 


임신 후기가 시작되면서 배가 점점 가슴 밑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배도 점점 나오기 시작해서 고개를 숙이면 내 발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몸을 숙이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바지 입기, 양말 신기, 발톱 깎기 등 몸을 숙여야 하는 모든 일들을 익숙하게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티비에서 남편들이 아내의 양말을 신겨주고, 발을 닦아 준다고 했을 때, 설마 그 정도일까 했는데… 맞다. 남편이 좀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남편은 기꺼이 도와주었지만, 내가 하면 몇 초만에 끝날 일인데 어설픈 남편의 손길이 답답하기도 했고, 어떤 일들은 좀 창피하기도 했다. 아 이렇게 모든 걸 다 보여주고 터야 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니!! 하는 생각에 심란했다.


배가 올라오고, 커지면 또 힘든 게 숨이 찬다는 거다. 배가 딱 갈비뼈 밑까지 올라오니 말할 때조차 숨이 헉헉 차고, 걸을 때나 누울 때는 배가 나를 압박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명치까지 차오르는 배 때문에 낮은 베개를 베고 자면 숨 쉬기가 힘들었다. 바디 필로우는 정말 필수였는데 후기가 되니 그것도 낮게 느껴져서, 머리 부분 아래에 천 몇 개를 더 깔고 베개를 높여야 했다.


잠자는 자세 때문에 잠을 정말 많이 설쳤다. 납작하고 못생긴  뒤통수는 무슨 일에도 정자세로만 자던 나의 오랜 고집으로 만들어  것이었는데그러던 내가  인생 처음으로 측면으로 자게 되었다. 정자세로 자면 복부가 폐를 압박하는 느낌이 들어 숨도   쉬어지고, 가위눌린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습관이란  갑자기 바뀌는  아니니까... 옆으로 누워자는게 불편해서 밤새 뒤척이느라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3. 조금만 무리하면 딱딱해지는 배.... 배뭉침


16주부터였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종종 배가 뭉치기 시작했다. 내 배가 아닌 것 같은 요상한 느낌에 좀 놀랐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고, 조금만 쉬면 괜찮아졌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 후기가 되면 이 배뭉침이 더 자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강도도 세진다.


임신 중기에는 산책이든 운동이든 조금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임신 후기가 시작되자마자 조금만 걸으면 갑자기 배가 딱딱하게 굳어지고,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30분을 거뜬히 걸을 수 있었다면 임신 후기에는 20분 정도밖에 잘 못 걷고, 너무 오래 서있어도 배가 금방 뭉쳤다. 그 간격이나 강도도 꽤 세져서 그냥 배만 딱딱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랫배가 약간 아픈 정도까지 갈 때도 있다. 흔히 사람들이 가진통이라고 부르는 게 생기는데, 임신 후기 초반에는 잘 안 나타나는데 주수가 지날수록 배가 더 자주 뭉치고, 콕콕 쑤시는 느낌이 더 심해진다고 하니 배가 뭉치는 간격이나 세기 등을 잘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튼 배뭉침이 있다가 풀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굳어있거나 태동이 잘 느껴지지 않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배가 뭉칠 때마다 약간의 불안감이 들었다.


배뭉침이 자주 발생하니까 모든 일들을 연속해서 하기가 힘들다. 집안일도 하다가 쉬고, 걷다가도 쉬고, 공부하다가도 쉬고, 모든 일의 흐름이 끊기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다들 뭘 하려면 후기가 되기 전에 하라고 했던 것일까.


4. 틈만 나면 화장실로


후기에 발생하는 또 다른 변화는 아무래도 소변을 자주 본다는 것이다. 임신 중기에는 초기보다 화장실을 덜 가게 되어서 잠도 푹 자고, 생활하는게 좀 수월했었는데 후기가 되니 다시 화장실을 자주 간다. 초기와 다른 점은 이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참기도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물을 마시면 거의 2 내에 화장실을 가게 되는데, 내가 무슨 액체 생성기가 되는  같다. 마시면 가고, 마시면 가고. 함정은  마셔도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 외출을  때면  화장실 위치를 확인했다. 몸이 무거운 탓에   편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되어서 공원이나 강가 같은 야외에 있을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해지곤 했다.


밤에는 더 심해진다. 잠에 취해서 화장실 가는 게 귀찮아서 일부러 자려고 했는데 그러면 방광 쪽이 콕콕 쑤신다(방광염의 위험이 있어서 절대 이러면 안 됨!). 화장실을 갔다 오다가 잠이 다 깨버려서 새벽 내내 말똥말똥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하루 종일 피곤+몽롱한 상태가 되어있다. 임신 후기에 수면장애가 다시 생겼는데 예전처럼 처음부터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잠이 다 깨버려서 잠을 못 자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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