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

현재라는 지점, 그 포인트

by 로사

벗어나야 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벗어난단 말인가? 생생한 악몽을 꾸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다가도 이 꿈이 마치 오늘의 고통스러운 하루를 예견하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안도는 잠깐이고 불안은 계속된다. 내 의식은 자석처럼 불안에 이끌린다. 아니, 불안을 이끌어오는 것인가?


처음에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다른 일에 몰입해 보기로 했다. 누워서 온갖 걱정을 하고 있기보다 몸을 일으켜 물을 한잔 마시거나, 책이나 영화처럼 몰입할 대상을 찾거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 도망쳐보았다. 효과는 있었다. 넋 놓고 숏츠를 끊임없이 재생시키다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이 들곤 했다. 하지만 휴대폰을 내려놓는 즉시 도루묵이었다. 한심하게 시간을 보낸 데 대한 자괴감까지 더해지니 괴로웠다. 도피는 원천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의식을 통해 나를 설득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아침이 오면 눈 녹듯 사라질 걱정들이야, 불안해할 필요 없어... 사실이었다. 파란만장한 꿈을 꾼 뒤에 그 대서사를 친구에게 이야기해 본 적 있는가? 엉성한 스토리에 불과하다. 해가 뜨고 나면 언제 어둠이 있었는지 깜쪽같이 잊을 정도로 인간은 간사한 존재이니 영원한 걱정거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나쁜 연인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다시 끌려가는 사람처럼 불안으로 이내 달라붙고 말았다. 이쯤 되니 불안이라는 감정에 중독이 된 건가 싶기도 했다. 기쁨만큼 슬픔에도 중독성이 있다. 불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뉴런이 연결되어 버린 거야... 신경 관련 자기 계발서를 대충 읽고는 이 지독한 연결고리를 끊고 새로운 사고회로를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습관이든 21일을 반복하면 몸에 밴다고 역시나 자기 계발서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21일 동안 뇌에 새로운 길을 내고 말테야...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걷어차내 보기로 했다.


불안이 몰려오면, 발로 뻥 차내는 것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머릿속으로 진짜 뻥 차내는 상상을 했다. 빠른 속도로 멀리 날아가는 공을 상상하면 속이 후련했다. 뻥 차고, 뻥 차고, 또 뻥 차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차내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결정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집중력이 감퇴되고 산만해진 것이다. 지인과 1대 1의 대화 중에 몰입하지 못해 흐름을 못 따라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며 걷어차기도 능사가 아니라 생각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무슨 일에든 매뉴얼을 읽고 덤비는 게 아니라 덤비고 나서 나만의 매뉴얼을 만드는 성격이다 보니 시중에 나오는 심리학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되는대로 두서없이 시도해보았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에 감명을 받아 현재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집중하려고 하다 보니 현재가 뭔지 모르겠는 것이다. 현재는 찰나에 지나가 과거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현재를 붙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1초 전의 과거도 수정할 수 없고 1 후의 미래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현재만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내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짧디 짧은 순간인데 그 '지금'을 무수히 놓쳐버리고 있었다. 눈곱보다 작은 구슬 하나를 집는 느낌으로 현재를 알알이 잡고 싶었다. 현재라는 포인트를 정확히 캐치하겠다는 마음으로 순간에 집중해 보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그간 빈번하게 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곱씹는 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과거 때문에 한탄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었다. 슬픔도 우울감도 사람을 취하게하는 중독성을 가졌다. 더 이상 처연한 슬픔이나 까닭 없는 우울나를 내맡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기쁨만큼 슬픔에도 매력이 있다. 행복만큼 고통에도 매력이 있고, 삶만큼 죽음에도 사람은 이끌린다.

스스로를 해치는 줄 알면서도 부정적인 생각들에 이끌리는 게 '인간'이라는 아주 인간적인 존재들이다.

낯선 평온보다는 익숙한 불안을 택해 집착하듯 곁에 두던 날들에서 벗어나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재'를 찾곤 했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때 '현재'를 불러낸다.

현재의 정확한 지점을 내 엄지와 검지로 정확하게 잡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보다 1mm 앞선 과거도 과거인 이상 내 손으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은 내 손으로 잡은 바로 이 '현재'와 그 이후, 미래뿐인 것이다.


아주 뻔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언을 하지만 이전에는 전혀 와닿지 않았었다. '현재'라는 것이 하나의 서사나 돌아가는 필름의 일부처럼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현재'는 찰나여서 붙잡기 힘들 뿐 필름의 정확히 한 컷, 하나의 포인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의식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잡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환기시킨다. 오늘 아침의 일은 물론이거니와 5분 전의 일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로 살면서, 바꾸지 못하는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진을 빼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 같다.


'현재'를 찾아보기.


바로 이 순간을 잡는 것이다. 내가 캐치한 바로 이 순간 이후부터가 내 손안에 있는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들이니, 내가 쥐고 있는 이 '현재'와 가능성의 형태로 현존하는 '미래'에 막강한 나의 힘을 발휘해 본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순간에는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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