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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y 20. 2024

퇴사를 다짐했는데 못하겠다  

퇴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일상




온 몸의 세포가 이건 '퇴사각'이라고 알려주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날이었다. "너에게 기회를 준 내가 병x이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이건 끝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그녀가 나의 업무적 모자름과 부족함을 지적하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맞는 말 같아서. 그녀의 말대로 내 연차에 이정도 일하고, 이정도 하는 건 잘하는게 아니라 당연한거고 여기에서 조금 더 아이디어를 내고 더 적극적이어야하고 소통에 있어서 더 나은 사람이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잘못한게 맞는거 같아서.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다르게 그녀의 지적질이 내 마음에 반사판이라도 있는마냥 튕겨져 나갔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교묘하게 그녀 입장으로 편집된 말들, 저 말만 들으면 나는 하등 쓰레기 아닌가? 이게 가스라이팅인가? 그러다가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병X이라 칭하며 그녀는 내앞에서 자학을 했다. 내 귀엔 '니가 병X'이란 말로 들렸다. 그녀는 왜 자기한테 상처를 주고, 자기를 힘들게 하냐고 물었다.


나도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은 당연한건가요?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그동안은 구설수에 오르기 싫어서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정말 내가 병X인가 쓰레기인가 너무 답답해서. 혹시나 소문이 잘못날까봐, 내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을까봐 꾹 참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그래 나도 잘못한게 있겠지. 그녀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거슬리게 한 내 잘못이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게 정당한건가?' 그런 류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정말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쉬고싶어'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쉰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영영 발을 뗴야 할 것 같아. 이제 은퇴각을 재야할 것 같아, 라고도.


한 때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은 소원해지다보니 이제는 동종업계 동료로 남은 한 친구가 말했다. "괜찮아. 안쉬어봐서 그래. 한번 쉬어봐"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일상을 누려봐" "그래야 이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어" 이제 다시는 이 일을 못할 것 같았는데, 쉬어야 더 오래 할 수 있다고?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준 고마운 말이었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이게 바로 직장내 갑질이라며 기막혀하셨다. "물론 제가 잘못한것도 있겠지만..."이라고 말 끝을 마무리하는 나를 선생님은 다잡았다. 잘못한게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위로가 됐다.


언제나 내 편인 남편과도 긴대화를 했다. 남편은 내가 퇴사 심심해할까봐, 그게 걱정이라 했다. 주말에도 '심심해' 라는 말을 곧 잘 하는 내가 걱정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내가 심심해할까봐, 그게 조금 걱정됐지만 정말 그만둘 마음을 먹어가니 묘하게 설레기도 했다. 퇴사 후 밀린 사진 정리가 하고싶고 그간의 일상들을 정리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경매도 배우고 싶고... 이번엔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밀려왔다. 물론, 이제 막 돈 모아가는 재미를 깨달아가는 신혼부부였기에, 매일 매일 엑셀 시트에 수입과 지출을 적어내려가며 숫자 쌓이는 재미를 보던 우리였기에, 그 재미를 잃는건 조금 아쉽고 미안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날밤, 퇴사를 결심했다. 엄청나게 마음이 홀가분 했다. 개운했다. 잠도 푹 잤다. 다음 날 출근길도 가뿐했다. 그리고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한 다음날. 그녀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제 한바탕 나에게 쏟아내서일까, 아니면 조증일까? 아무튼 그녀의 기분이 좋은 덕에, 혹은 내가 오늘은 그녀의 뭔가를 건들이지 않았기에, 조용했다. 그러다보니 또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여름 바지를 몇 개 사야할 것 같은데" 하루만 더 다닐까?


프리랜서인 나는 일급 페이로 계산이 된다. 그래서 하루만 더 감정노동을 하면 십여만원이 추가 되는 셈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왜 따뜻한걸 드세요?"


매일 아이스 커피를 먹던 내가 따뜻한 커피를 시키자, 다른 팀원이 물었다. 아마 유독 그날따라 조용했던 내가 걱정된 마음을 더해준게 아닐까? 아무런 편견없이 나를 대해주는 팀원의 밝은 미소도 밟혔다. 내가 이팀에서 내고 싶었던 성과도 나를 붙잡았다. 갑자기 이 팀에서 뭔가를 하고싶어졌다.


하지만,


"안해도 된단다"


그런 답변을 받았다. 다음날도 하루 더 회사를 다녔다. 결국 또 말을 못했다. 대체 나는 왜 그만두겠단 말을 못하는 걸까? 용기 부족일까, 억울함일까, 오기일까, 미련일까? 이 모든 감정이 뒤섞인 지금은 조금 더 정리가 필요한 때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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