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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제트 Jul 22. 2023

 <세상의 끝에서 세상을 말하다> 중에서

다큐 PD 9인의 세상 기록

다큐 PD 9인의 세상 기록 <세상의 끝에서 세상을 말하다>


전자책으로 읽었다.

그 중 영화 <워낭소리> 를 연출한 이충렬 pd와의 대담 중 한 마디 


Q.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잖아요. 연출자가 상황에 개입해도 되느냐 아니면 철저하게 관찰자의 입장을 지켜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충렬 …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 마음을 100퍼센트 다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 뭐가 진짜인지는 또 어떻게 알겠어요? 저도 늘 고민하는 건데, 제 자신도 뭐가 진짜인지 아직 모르겠어요. 그런데 거기에 사람의 눈을 대신한 게 들어왔어요. 내 눈으로 기록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나를 대신한 뭔가가 들어오면, 이미 진짜 눈 대신 다른 눈이 들어왔으니 진짜는 사라지는 겁니다. 판타지 같은 건데 그냥 이미지만 남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제가 저명하거나 높은 분을 찾아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슨 얘길 하실까요? 본인의 잘난 모습,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지 치부를 보이겠습니까? 표정부터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더러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요. 그럼 그건 진짜냐? 그것도 진짜가 아니죠. 설치하는 데 분명히 의도가 있으니까, 뭔가를 찍겠다고 하면 그 자체부터 이미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는 거죠.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돼 있어요. ‘진짜냐 아니면 가짜 같으냐’ 이건 ‘오십 보냐 백 보냐’ 하는 논쟁밖에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워낭소리>에 나오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할머니의 화장한 모습이 진짜는 아니잖아요. 카메라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원래는 안 그렇잖아요. 몰래 찍는다고 해도 찍고 있다는 걸 알면 말을 바꿔요. 그래서 진짜를 찍는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카메라가 따라다니면서 찍는 게 진짜가 아니죠. 보이는 대로 찍는 거죠. 진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찍는 거예요. 그냥 그 현상을 찍은 거죠. 본질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를 보든 다큐멘터리를 보든 감동하는 건 보이는 대로 보인다고, 리얼하다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관계성에 답이 있어요. 그 안에서 어떤 마음이나 생각, 고통 이런 것들을 느껴서… 그걸 통해서 ‘리얼하다, 나 같다, 내 삶 같다’ 하는 것이죠.

(23-25 page) 


일단 나도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자.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면서도 유행하는 단어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얼씨구)

다큐건 극 영화건 아니면 사진이건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그 피사체는 작가의 영향을 받는다.

받는 게 정상이고 받아야만 하며 받을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 혹은 사진을 보는 독자 혹은 관람객들의 눈에 들어오면

그 예술물은 다시 독자의 영향을 받는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

논쟁거리가 안되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었다.


여기서 가케트의 끼어들기.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아마추어고

"그렇게 논쟁이라도 해야 비평가 나부랭이들은 먹고 살죠"라고 해야한다.

우리는 알잖아. 

영화 감독이 먹고 사는 방법과 영화 비평가들이 먹고 사는 방법은 다르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닥은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충렬은 순수 혹은 순진했던거다. 가제트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바로는......

그래서 "워낭소리'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세상은 연결되는 거고 우리는 이런 곳에서 관계 맺는 거고

양자역학이라는 머리 아픈 단어 한 번 더 나와 주시는 것이고.

 

이충렬 PD는 실수-세상 기준으로보면 실패-를 많이 했다.

마지막의 심정으로 워낭소리를 연출할 때 그는 속칭 "어깨의 힘을 빼고" 찍었다고 한다.

이게 대박이 났지만 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익숙치가 않다는 게 더 좋은 설명이 될까?

이제 어깨에 힘을 뺄 줄 알았으니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본다.

책에서는 <매미소리>라고 했는데 <워낭소리>가 아버지와 소의 이야기라면

<매미소리>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라고 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이충렬 감독이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알라딘에서 가져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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