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 루틴

삶고, 까고, 먹는 일에도 철학이 있다.

by 송애옹

별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마다 2개의 삶은 계란을 먹는다.

아침 식사로 계란을 택하게 된 것은 계란은 맛있으니까, 건강에 좋으니까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단순히 빈 속에 커피와 영양제를 먹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음식이었다.


위와 장이 예민한 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지만 공복에 마시지는 못한다. 빈 속에 카페인이 들어가는 순간 속이 쓰린 것은 물론이고 상황이 악화된다면 위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


영양제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의 영양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식후에 섭취를 하고 있는데 한 번에 모든 영양제를 다 털어 넣자니 각각의 효과가 상쇄될 것 같고, 최대한 나눠 먹어야 하는데 점심, 저녁 두 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영양제를 세 번에 나눠먹기 위해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아침을 간단히 먹기 때문에 아침과 점심의 텀이 짧다. 아침은 보통 9시 전후에 먹는 반면, 점심시간은 12시 정도니까. 그렇다 보니 아침을 일반 끼니와 같은 양으로 먹기엔 좀 부담스러워서 공복을 달래고 모닝커피를 즐길 수 있으며 영양제도 먹을 수 있고 단백질 섭취도 하기에 '적절한' 음식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게 삶은 계란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슈퍼푸드 같은 느낌)


나는 '반숙 덕후'다. 정확히 말하면 노른자의 약 40% 정도가 익지 않아 흘러내릴 정도로 익은 계란을 좋아한다. 껍데기를 까서 반으로 자르거나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흰자는 매끈매끈 노른자는 겉면만 살짝, 안쪽은 덜 익어서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로 삶아진 계란이다. 계란프라이도 거의 흰자만 간신히 익혀 먹는다. 그냥 익지 않은 노른자를 좋아하는 걸까?


워낙 완숙보다는 반숙이 인기이다 보니 편의점에서도 반숙 계란을 판매한다. 감동란, 반숙란 등의 다양한 이름을 가진 계란들이 있는데 내 기준에는 너무 많이 익었다. 그리고 냉장 보관으로 인해 차가워진 상태의 계란을 바로 먹는 건 불호다.


나의 삶은 계란 루틴은 다음과 같다.


1. 계란 8개~10개를 30분 정도 실온에 꺼내둔다.

2. 냄비에 물을 올리고 식초를 조금 넣은 뒤 센 불로 끓인다.

3. 물이 끓으면 국자로 계란을 하나씩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는다. 물론 그렇게 조심해서 넣어도 냄비 속에 들어가자마자 쩍쩍 갈라지는 것들이 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함께 넣은 식초가 깨진 흰자들의 탈출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4. 계란을 모두 끓는 물에 넣으면 불을 중 약불로 줄인다. 중불은 계란이 너무 익어버리고, 약불은 흰자가 익지 않으므로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5. 불 세기를 조절했으면 타이머를 6분 30초로 맞춘다. 6분은 너무 짧고 7분은 너무 길다. 딱 내가 좋아하는 '흐르는 노른자'를 만들려면 6분 30초가 딱이다.

6. 6분 30초가 지나 타이머가 울리면 바로 불을 끄고 찬물에 계란을 담가서 식힌다.

7. 어느 정도 식으면 바로 먹을 것은 빼고 당장 먹지 않는 계란들은 냉장고에 보관한다.


위의 방법으로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물이 끓을 때 계란을 넣지 않고 처음부터 계란을 함께 넣고 삶았더니 껍질이 잘 까지지 않아 흰자가 절반이나 날아간 계란을 얼마간 먹어야 했고, 가스불을 약불로 두고 7분을 삶았더니 계란을 까는 순간 흰자가 흘러내렸다. 껍데기가 잘 벗겨지게 삶으려면 물을 끓일 때 소금을 같이 넣고 끓이라는 둥 의견들이 많지만 (다 필요 없고) 그냥 물이 끓을 때 계란을 넣으면 된다. 그 사실을 계란 한 판 정도를 삶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직접 겪어봐야만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를 한 번만 쓱 보고도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레시피에 아무리 자세히 적혀있어도 미처 언급되지 않은 (가스불 세기 같은) 것을 간과하여 음식을 다 태워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적으로 후자다. 직접 온몸으로 하나하나 겪어봐야 내 것이 된다.


고작 삶은 계란이 뭐라고 이렇게 궁서체인가 싶겠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나는 내가 삶은 계란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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