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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11. 2019

나는 사실 김밥이 반가웠다

일상의 흔적 93

10월 11일, 제법 쌀쌀해진 날씨. 난 김밥을 좋아한다 엄청.

보통 점심은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입사 초기엔 호기롭게 도시락을 싸다니거나 밖에서 사 먹거나 아주 가끔 편의점 음식을 먹었지만 1년 남짓 지날 때쯤 모든 게 귀찮아졌다. 게다가 맛없기로 유명한 구내식당이 조금씩 메뉴나 맛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곳이기에 집밥 느낌도 난다.


전문적인 영양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식단은 대체로 비슷한 구성에 요일만 바뀌는 수준이다. 몇 달 먹다 보니 오늘쯤엔 어떤 메뉴가 나올지 대충 예상이 간다. 금요일엔 항상 한 그릇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평소보다 간소한 음식이 나온다. 일주일의 끝이기에 이모님들도 빠른 정리와 간편한 식자재 관리를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이번 금요일에는 김밥과 컵라면, 처음엔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금액과 비교하며 너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직원도 생각은 비슷, 불평 없이 매번 잘 먹던 직원도 몇 번이나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결국 그냥 허허허 웃어넘기며 김밥과 라면을 먹다 보니 살짝 소풍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 슬며시 김밥이 반갑고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어릴 땐 엄마가 직접 만드는 김밥을 소풍날만 먹을 수 있었다. 재료 손질부터 말기까지 이리저리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은 바쁜 엄마에겐 항상 외면받는 메뉴였다. 하지만 소풍을 갈 때만큼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른 새벽부터 정성스럽게 직접 말았다.


소풍날 아침엔 늘 고소한 냄새와 눈을 뜬다. 부지런하게 일어나 재료를 볶고 밥을 식히던 엄마의 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늦을세라 발을 동동거리고 뜨거운 밥을 호호 불며 식히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건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날만큼은 못해주는 것 없이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싸준 김밥을 가방에 넣어 보내는 것.


엄만 항상 소고기와 조린 우엉을 넣어줬다. 파는 김밥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참치마요를 넣어준 적도 있었다. 재료가 넘쳐 주먹만 한 김밥을 싸가면 항상 내 김밥이 제일 빨리 없어졌다. 집으로 돌아가 조잘조잘 자랑하듯 떠들고 나면 뿌듯해하는 엄마 얼굴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저녁을 남은 김밥으로 먹으면서도 질리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소풍 갈 일도 김밥을 쌀 일도 없는 지금 엄마에게 물었었다.

"바쁘고 힘들 텐데 그냥 사서 주지 왜 꼭 직접 만들었어?"

"미안해서, 너 기억 안나지? 어렸을 때 엄마가 산 김밥 그대로 가방에 넣어줬다가

다 터지고 흘러나와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왔었잖아. 친구들이랑 같이 먹었다고 웃는데

엄만 그게 아직도 미안하더라."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듯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것 같다. 결혼 전까진 집안 살림을 해보지 않았던 엄마는 결혼과 출산을 하며 요리를 시작했었다. 난이도가 있는 음식은 사다 먹었는데 그중 김밥도 포함이었다. 첫아이의 첫 소풍에 엄만 당연하게 김밥을 사줬는데 서투른 마음에 포장지 그대로 넣어준 김밥이 다 터지고 흘러나온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초보 엄마가 김밥으로 더러워진 가방을 보고 얼마나 실망하고 미안했을지 섣부르게 공감할 순 없지만, 결연하게 다음엔 직접 싸줘야겠다고 다짐했을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웃어버렸다. 귀여운 우리 엄마, 이젠 팔아도 될 정도로 맛있는 김밥을 싸는 김밥 장인. 난 엄마의 결심 덕에 소풍마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따뜻하고 맛있는 김밥을 먹어왔다. (엄마의 김밥이 너무 맛있는 덕에 파는 김밥이 때론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구내식당 김밥은 정성이 가득한 손맛이 났다. 수많은 직원들의 배를 모두 채워주려 이모님들이 오전 내내 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투정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김밥과 육개장사발면, 사실 너무나 완벽한 조합이자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조합이다. 배식판에 바닥이 보이기도 전에 쉼없이 김밥을 말고 써는 이모님들을 보며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었다.


햄, 단무지, 게맛살, 오이, 계란, 우엉,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이모님의 마음이 담긴 김밥. 올해 먹은 김밥 중 제일 맛있었다. 오늘 저녁도 김밥이 먹고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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