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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24. 2019

내 잘못임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일상의 흔적 96

10월 22일, 추워지나 했더니 아직은 초가을. 먼저 내민 화해의 손길

살짝 추워지나 했더니 아직은 포근한 초가을의 날씨에 머물러있다. 걸어가기엔 충분히 기분 좋은 날씨에 걸음이 씩씩해진다. 유난히 무더웠던 더위도 끝나고, 우산마저 휘청이게 만든 태풍도 지나가고 걷기 좋은 날이 이어진다. 차가워지는 공기를 따라 점점 더 빨리 어두워지는 하늘이 조금은 야속하지만 상쾌한 바람은 반갑다.


공원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제주도로 내려가는 선택에 대해 말다툼이 있었던 친구라 받고 싶지 않았다. 손 안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한참을 보고 있었다. 받지 않았음에도 연달아 울리는 전화기에서 눈을 떼고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는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떼며 결국 전화를 받았다.


"미안해 네가 쓴 글 봤어...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정말 아니야.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어...

전화받아줘서 고마워, 꼭 오해를 풀고 화해하고 싶었어."


친구는 내게 몇 번이나 사과하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엔 자신의 말을 오해한 내게 서운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본인의 말이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락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내 차가운 반응이 걱정돼 미루기만 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건네며 그 말의 뜻을 다시 전달했다.


친구의 변명은 내 마음을 풀어주기엔 생각보다 따뜻하진 않았다. 친구는 변명을 하는 와중에 지속적으로 '오해'라는 단어를 뱉었다. '내 뜻은 그런 게 아닌데 네가 오해한 거야'라는 말은 '내 뜻을 몰라주다니 네가 잘못 느낀 거야'로 받아들여졌다. 오해의 사전적 정의가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이니 마치 내 탓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친구의 변명을 들으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슬쩍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별다른 말 없이 그냥 고맙다고 했다. 오해라고 말할 용기를 내줘서, 내려가기 전 사과를 해줘서, 고맙다고. 비록 말 한마디에 다투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줬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였으니 이렇게라도 풀고 내려갈 수 있게 해 줬으니 고맙다고.


누군가와 다투고 난 뒤 싸움의 원인이 나한테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어릴 때와 달리 나이를 먹을수록 내 잘못을 인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내 실수라는 것을 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쓸모없는 자존심이 그 앞을 막는다. '미안하다' 간단한 단어 앞에서 그 말을 입에 담기까지 몇 번의 주저함을 넘어야 한다.


그걸 알기에 묘한 뉘앙스에도 아무것도 더 묻지 않고 용기 내줘서 고맙다고 대답을 끝냈다. 왜 나이가 들수록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두려워질까. 왜 알면서도 인정하는 것이 힘들어질까. 친한 사이일수록 허물없는 사이일수록 더 조심하고 주저 없이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왜 잊어버릴까. 내가 바란 건 장황한 우리 둘 다 잘못했다는 뜻의 변명이 아니라 그저 간단한 사과 '미안해'였다.


하지만 오해라고 말하는 것도, 몇 번의 통화를 시도해 사과를 건넨 것도, 차가운 내 반응에도 꿋꿋하게 뜻을 전한 것도 몇 번의 주저함을 넘겨 큰 용기를 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마웠다. 예전처럼 친구를 대하진 못하겠지만 용기를 내준 것, 그 마음만큼은.


(전에 쓴 글은 친구에게 보란 듯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진짜 내가 친구의 걱정을 곡해한 건지 기분 상한 내가 예민한 건지 하소연하고 싶었었다. 제대로 말도 안한채 화만 내고 자리를 피한 나 역시 잘한 것은 없기에 그저 그때 내 감정에 대해 적고 싶었다. 이번 글 역시 친구가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이젠 우리의 뜻이 서로 다름을 말하고 싶었다. 눈만 봐도 서로 통하던 시절을 지나 생각의 길이 달라졌음을, 같은 상황에서 의견이 달라진 것 뿐이니 혹시나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있다면 털어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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