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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21. 2019

으슬으슬 추운 날엔 어묵 국물

일상의 흔적 95

10월 18일, 타닥타닥 비 그리고 약간의 바람. 비가 오는 날엔 포장마차

하늘이 꾸물꾸물 어둡더니 기어코 비가 내린다. 아직은 가을 가을 했던 날씨가 이젠 곧 추워질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축축하게 내리는 비에 기분도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세차게 내리는 비, 조금 어두워진 사무실, 으슬으슬 추워진 날씨. 이런 날엔 따끈한 어묵 국물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펄럭거리는 비닐 장막 안으로 따뜻한 김이 피어나는, 오늘은 포장마차를 가야겠다.


다른 날이었으면 당장에 누구든 연락해 만났겠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불타는 금요일에 여자 혼자 포장마차에서 분식을 즐겨도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은 포장마차는 어디 있을까. 앉아서 편하게 조용히 즐기고 싶은데 고민이 깊어진다. 퇴근까지 남은 시간 내내 생각만 하다 일단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는 금요일이면 문을 여는 작은 포장마차가 있다. 물론 매주 오는 곳은 아니라 (아마도 합법은 아닌 듯)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 비도 오고 날씨가 좋지 않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더니 다행히 불을 반짝 켜놨다. 구수하고 뜨끈한 멸치 국수도 매콤한 닭발에도 눈이 갔지만 역시 으슬으슬 쌀쌀한 날엔 어묵이다.


어묵을 몇 개 담고 떡볶이에 순대까지 욕심껏 주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친근한 양철통에 담긴 어묵이 나오고 양념이 두둑하게 담긴 떡볶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통한 순대가 차례대로 나왔다. 급하게 어묵부터 들어 크게 한입 먹었다. 어묵 사이사이에 잔뜩 배인 국물이 입 안을 뜨끈하게 채우고 속까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찬다.


통통한 순대도 하나 입에 넣었다. 부산에 오기 전까진 순대엔 무조건 소금이었는데 이젠 막장이 더 익숙해졌다. 없으면 묘하게 서운한 막장과 함께 먹는 순대는 역시나 흐뭇한 맛이다. 살짝 입이 심심하다 싶을 땐 매콤한 떡볶이를 집는다. 꾸덕한 양념을 가득 올린 길고 퉁퉁한 떡 하나를 몽땅 입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떡 사이로 매콤한 양념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고 있는데, 술도 한잔 시키지 않는 첫 손님을 슬쩍슬쩍 이상하게 보던 이모가 무심한 듯 사이다를 건넸다. 이것만 먹어서 식사가 되겠냐며 묻더니 작은 그릇에 국수를 담아줬다. "나 먹으려고 삶았는데 양이 좀 많네. 나눠먹지 뭐"


작은 포장마차 주방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이모와 식사를 했다. 무표정에 툴툴거리는 말투지만 슬쩍 김치도 얹어주고 단무지도 밀어줬다. 고개를 살짝 내민 이모는 심심한지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혼자 왔어?' '술은 안 마셔?' '집은 이 근처야?' '뭐 좀 더 줄까? 배불러?'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서요' '술은 잘 못 마셔요' '집이 이 근처라 여기 종종 지나가곤 했어요' '충분히 많이 주셔서 배불러요 맛있어요!' 헤헤- 기분 좋은 웃음에 이모 얼굴에도 슬쩍 웃음꽃이 핀다. 분명 배가 부른데도 자꾸 슬쩍 음식을 밀어준다. 어쩐지 음식보다 그 안에 담긴 정이 더 배부르게 와 닿는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해 혹은 추위를 피해 또는 좋은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로 포장마차도 바빠졌다. 순수하게 어묵이 먹고 싶어 찾아온 첫 손님은 이제 자리를 비켜줘야 할 타이밍이다. 슬쩍 일어나 계산을 하고 이모와 눈인사를 주고 받는다. 언젠가 또 쌀쌀한 금요일에, 혼자 있고 싶은 그런 날에 다시 오기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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