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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28. 2019

'너무 늦었어'는 누구의 기준일까

일상의 흔적 97

10월 26일, 조금 차가워진 공기.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언제일까

어쩐지 알람보다 일찍 눈을 떴다. 기분 좋게 학원 갈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꼼꼼하게 가방을 챙겼다. 날씨마저 화창하고 좋아 조금씩 기분이 들뜬다.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 얼굴에 웃음이 걸린다. 버스에 드문드문 난 자리에 얼른 앉아 쏟아지는 햇살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버스는 한적한 주말의 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주말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가게 된 학원은 역시나 즐거웠다. 우유 스티밍을 조금씩 이해하고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각자의 실수를 보듬어 가며 수강생들과도 즐거운 수업시간을 보냈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기만 한 커피지만 내 손으로 한잔의 커피를 뽑아내고 그럴듯한 카푸치노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더없이 짜릿한 일이다.


4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더 연습을 하고 싶지만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청소를 하고 자리를 비웠다. 얼마 전 알게 된 친구와 약속 있어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던 친구와 만나 전포 근처의 예쁜 카페로 향했다. 카페를 좋아하는 나와 커피 자체를 좋아하는 친구와 만남이라 가볼만한 곳 몇 개를 골라놨다.


친구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오랜 시간 다른 삶을 산 우리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재밌었다. 삶은 달라도 삶에 녹아든 생각과 가치관이 잘 맞는 것도 신기했다. 나이, 고향, 직업군까지 무엇하나 접점이라고는 없는 우리가 알게 된 것 또한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큰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기 전까진.


친구는 내가 곧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가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 결정을 응원해줬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내려가서도 지금과 같은 분야에서 일할 곳이 있겠냐는 질문에 상관없다는 답을 한 후부터다. 난 대답처럼 정말 상관없었다. 지금과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돼도 좋았지만, 지금 제일 관심이 큰 커피 분야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친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이제 와서 다른 분야를 한다고?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이제 한 분야에서 좀 더 경력을 쌓고 전문성을 길러야 하지 않아?

우리 이제 적은 나이 아니야, 새로운 도전은 좋지만 섣부르게 생각하면 안 돼..."


누군가의 기준에선 적은 나이는 아니겠지만, 내 기준에선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손에 익어서 이미 익숙한 일만을 하며 살아가기에도 힘든 게 삶이라고 한다면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아직 삶은 재밌는 요소로 가득한 무궁무진한 세계다. 아직은, 아직은 내가 지치지 않았기에 줄곧 걷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 보고 싶다.


물론 친구의 말처럼 내 생각이 섣부른 도전이 되어 시간만 낭비한 실패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가 될지 내가 모르는 재능을 꽃피우게 될 기회로 성공할지는 사실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너무 늦었다니, '늦었다'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언제든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만 살아있다면 늦은 순간이란 없다.


같은 수업을 듣는 수강생 중에는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배인 분들도 있다. 좋아하는 커피를 더 깊이 배우고 싶어서 혹은 멋진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서 각자 꿈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배우는 것이 조금 더딜지라도 배움에 대한 의지는 나보다 높다. 물어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끊임없이 배우려 노력한다.


매주 이분을 보며 느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늦은 때'라는 건 없다고. 새로운 시도가 혹여나 제대로 된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도전했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남을 것이라고. 나 또한 주어진 현실에서 안주하고 편한 곳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내 가슴을 뛰게 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후회 없는 선택에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어야 한다고.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친구가 웃었다. 자신의 서투른 편견을 인정하며 너무 꼰대 같은 말이었다고 자조했다. 꿈을 찾아 방황하던 굴곡의 20대를 지나왔건만 과거를 잊고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에 안주하고 살라는 말이 본인도 모르게 나왔다고 했다. 혹여나 내가 상처 받고 좌절하거나 방황하는 어두운 순간을 겪을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며 어깨를 다독여줬다.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겨 긴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우리의 생각은 같았다.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면 꾸준히 곧은길을 걸어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금의 루틴이 지겹게 느껴진다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지겨운 말이지만 '너무 늦었다'라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절한 때'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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