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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31. 2019

'일하기 싫어 병'에 어떤 약을 써볼까

일상의 흔적 98

10월 30일, 바람이 춥고 공기가 서늘. 하기 싫은 것만 넘쳐난다.

이불 밖이 위험한 시기가 왔다. 이불에서 슬쩍 빼놓았던 손에 금세 싸늘한 기운이 서린다. 차가운 공기는 몸을 굳게 만들고 굳은 몸은 따뜻한 곳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치 없는 알람이 이젠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마지노선임을 알리듯 신나게 울린다. 제 역할을 다하는 핸드폰을 괜히 째려본다. 이런, 이미 '일하기 싫어 병'에 걸린 것 같다.


왜 날씨가 추워지면 더 무기력해질까. 봄에는 춘곤증, 여름은 더위, 가을에는 화창한 날씨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무기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유독 추위에 약한 편이라 날씨가 서늘해지면 몸의 텐션이 낮아지면서 무기력해진다. 일은 많고, 처리해야 할 일이 눈앞에 쌓이지만 모든 것이 싫어지는 겨울이다. '싫어 싫어, 일하기 싫어'가 입 안에서 맴돈다.


'일하기 싫어 병'에 걸려 무기력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의자에 녹아들면서 극복 방법을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징징거리고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텐션을 높여야 한다. 좋아하는 책을 쌓아놓고 읽어볼까, 맛있는 겨울 별미를 먹어볼까, 활기찬 활동을 해볼까, 업무 다이어리에 끄적거리다 보니 시간이 술술 간다. 음... 농땡이가 답이었나 싶다.


까만 글자를 보고 또 보면서도 잘 모르겠다. 뭘 해야 조금은 신나게 업무시간을 잘 보내고 퇴근 후에 충전할 수 있을까. 기다려지고 설레는 무언가가 있다면 기대감이 가득 차서 일하는 속도도 빨라질 것만 같다. 평일 퇴근 이후에 해야 하니 내 체력을 깎아먹거나 귀찮으면 안 되고... 는 무슨, 사실 맛있는 거 먹기를 쓰면서 이미 신났었다. 답을 정해놨으면서 괜히 생각을 더 해봤다.


모든 것이 풍족한 가을이 지나서 별거 없을 것 같지만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간식이 무궁무진하다. 간편한 카드만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주머니에 현금을 지니게 하는 붕어빵, 호떡부터 추울 때 호호- 불어서 먹는 게 제맛인 호빵, 따뜻하고 통통한 계란빵,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바로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군고구마, 군밤 등 오직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간식이다.


게다가 추워서 빨개진 손끝에 닿는 따뜻한 간식은 손에 들고만 있어도 온 세상을 다 가진 뿌듯함이 든다. 따뜻함이야말로 오직 겨울에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감각이다. 게다가 제철 맞은 과일로 만드는 간식도 뺄 수 없다. 새콤달콤한 생 딸기를 아낌없이 가득 넣은 케이크부터 알찬 밤이 가득 들어간 몽블랑 케이크, 건강한 단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단호박죽! 상상만 해도 즐거운 마음에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하루에 하나씩, 퇴근길에 간식을 사서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도톰한 이불을 푹 쓰고 앉아 간식을 먹는 것으로 '일하기 싫어 병'의 처방을 내렸다. 벌써 뿌듯함이 차오른다. 물론 이거 하나로 '싫어 병'의 완치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완화의 효과는 충분할 것 같아 만족스럽다. 일단 오늘은 달달한 호떡을 사는 것으로 결정했다.


남은 시간을 체크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아이디어를 낸 머리를 셀프 쓰담 쓰담하고는 집 근처 호떡집 위치를 고려하며 최적의 퇴근 루트를 짰다. 째깍째깍, 시간이 더 빨리 달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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