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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11. 2019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에 마음이 울렁였다

일상의 흔적 100

11월 5일, 다소 서늘해진 공기. 내 마지막 20대 생일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여러 개의 카톡이 와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내용의 카톡을 보고 있자니 괜히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간다. 생일에 대해 딱히 큰 감흥이 없어 꼭 챙겨야 하는 날이라고 규정해놓지도 않고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건만 그래도 축하받는 건 당연히 기쁜 일이다. 지인들은 축하의 말과 함께 커피와 케이크를 묶어 선물을 보내줬다.


손에 선물 받은 커피를 쥐고 있으니 출근길이 가볍게 느껴졌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며 새침하게 굴었어도 내심 기억해주고 연락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웠다. 게다가 20대로 보내는 마지막 생일이었기에 새삼스러운 느낌도 들어 괜히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퇴근 이후에는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나는 언니들과 약속이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셋은 모두 영상 회사에서 만났다. 그땐 윤 언니는 직원이었고 나와 수 언니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지고 어쩌다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게 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만나면 반갑고 문득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이인 것은 확실하다. 8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고 대화의 주제도 점점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즐겁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이다.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고 바쁜 하루가 시작되는 날이기에 아쉽지만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집에 도착해서 정리를 하고 있을 즈음 수 언니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케이크에 촛불이 없어서 아쉽지 않았냐는 내용에 '잉 애도 아니고'라고 가볍게 생각하다가 다음 문장을 읽고서는 마음이 울렁였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 동생"

엄마를 제외하고 타인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 존재 그 자체로서 누군가에게 고마움으로 자리한다는 말, 내가 태어난 날 이 말을 들어서 더 마음이 울렁였다. 작은 휴대폰 넘어 반짝이는 카톡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만나서는 절대 못할 이 오글거리는 말을 전하려 핸드폰 자판을 톡톡 눌렀을 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인간관계에서 순수하게 서로의 존재 그 자체에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 안다. 서로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는, 더 주고 싶은, 상대방이 잘 될수록 오히려 더 마음이 뿌듯해지는 사람.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를 안아주고 있는 관계, 수많은 시간을 되짚어 봐도 앞으로의 시간을 상상해도 수 언니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나에게 수 언니의 존재는 조금 당연해졌다. '당연'하다는 말에는 소중하지 않다는 말보단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다. 언제 어느 때고 내 일상에 언니가 있다는 것이 어느새 당연해졌다. 따뜻한 집이 그리울 때, 온전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과 속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한없이 누군가에게 징징거리고 싶을 때 당연하게 언니를 찾았다.


언니와는 튼튼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아주 가늘게 연결되어 끊어질까 봐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언니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단단하게 연결돼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자주 언니에게 기대고 어느 때고 언니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더 소중해지고 이 단단한 끈이 더 단단해질수 있게 신뢰를 쌓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하루를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졌다. 언니가 용기 내서 보내준 말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을 울린다. 이번 생일이 너무 특별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생일 때마다 혹은 힘들 때마다 이날의 기억을 꺼낸다면 다시 행복해질 것 같다. 내 존재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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