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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02. 2019

나는 그때 어떤 말을 해야 했을까

일상의 흔적 12

1월 1일, 매서운 바람과 상관없는 따뜻한 이불속,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정신없는 2018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느긋하게 눈을 떴다. 한참을 이불속에서 꼬물거리다 확인한 핸드폰에는 동생의 카톡이 와있었다. 부모님과 말다툼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며 내 연락이 닿지 않는 동안 다른 친구와 만남을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내용의 카톡을 읽으며 걱정을 했지만 가볍게 얘기하는 동생의 말을 믿었다.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마지막 톡을 읽으며 나도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가고 동생도 마음을 다독인 줄 알았다. 새벽 한 시, 어렴풋이 들리는 알람 소리에 잠이 깼고 몽롱한 눈으로 읽은 톡 내용에서 눈이 트였다.


동생은 본인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움과 슬픔, 혼자 잔뜩 짊어지고 있던 어두운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깜빡이는 키보드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차가운 휴대폰 넘어 내 동생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혹시 울고 있진 않을까, 울지도 못한 채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동생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나는 함부로 어떤 말도 쓰지 못했다. 내가 위로할 자격이 되는 것일까. 상투적인 위로가 아닌 상처 받은 마음을 잠시나마 안아주고 싶었지만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지 머릿속이 어두웠다. 동생이 겪은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깊이 공감할 수도 없는 지금의 내가 어떤 말을 한들 동생에게 닿을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 어지러웠다.


혹시나 잘 모르는 내가 한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진 않을까, 영혼 없는 메아리 같아 힘내, 힘들었지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앞뒤 없이 토해내는 말 앞에서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그 순간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동생의 옆으로 달려가 온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온통 검은 방에 갇혀 무릎을 끌어안고 혼자 견디고 있는 이 아이의 마음에 약한 빛이 되고 싶었다.


늦은 밤, 내일 출근이라는 핑계로 고민만 이어가다 결국 집을 나서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누구보다 아끼는 동생에게 달려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작은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차가운 휴대폰 속에서만 동생에게 손을 뻗었던 새벽의 어둠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그때 어떤 말을 했어야 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옆에서 그저 작은 온기라도 나누며 보듬을 수 있게 달려가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후회뿐이다. 나이가 들면 어른스럽게 어린 동생의 마음을 잘 보듬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더 많이 산 세월이 날 든든한 어른으로 키워줄 것이라 믿었었다.


내가 막연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숙하고 불안한 그 어느 사이게 껴있는 듯하다. 언제쯤이면 난 아끼는 사람이 힘들 때 의연하게 마음을 토닥이고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이던 단단하게 상대방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원망스러운,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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