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Jan 11. 2020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인 줄 알았다

일상의 흔적 103

1월 1일, 뺨을 스치는 차갑고 세찬 바람.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하다

엄마와 친한 이모들과 급작스러운 청주 여행을 떠났다. 집에 모여 신나게 술잔을 기울이던 중 요즘 우울하다는 이모의 말에 술김에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느라 각자 바쁜 날을 보냈지만 오랜만에 제주를 벗어난다는 마음에 만나기만 하면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재밌어하는 이모들과 엄마의 얼굴을 보며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여행은 늘 그렇듯 즐거웠다. 제주도보다 훨씬 추운 날씨에 껴입은 옷을 더 꽁꽁 여미고 덜덜 떨어도, 생각보다 좁은 차에 끼여있어도, 어색한 길에서 헤매고 빙빙 돌아도. 우연히 찾은 밥집이 너무 맛있어서 웃었고 힘들게 찾은 경치가 멋있어서, 따뜻한 난로가 반겨주는 카페에서 향이 좋은 커피 한잔에.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잠시 내려두고 그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여유로운 하루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이 됐다. 아쉬운 마음에 한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여행의 시작이 된 이모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요즘 이런저런 일이 많아 힘든 것도 있지만 딸과의 갈등이 제일 마음을 괴롭힌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엄마를 피해 방 안으로 가버리는 탓에 말도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난 내 딸이 혹시나 나중에 실패하거나 그럴까 봐 편안한 길을 가길 바라는 마음인데, 이게 잘못된 걸까. 그동안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내 딸을 잘 모르겠어. 그저 내버려 두고 지켜봐야 할까? 나중에 미래에 혹시나 울게 되면 어떡하지..."


누군가의 딸이자 누나이자 혹은 여동생으로서의 역할만을 지니고 있다가 맡은 엄마의 역할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 이모는 이모의 어린 시절부터 사회생활까지 아쉽고 어려웠던 일을 떠올리며 내 딸만은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수많은 노력을 했다. 많은 것을 체험하게 해 주었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이모의 모든 시간을 주었다.


딸의 입장으로서 생각을 묻는 이모에게 그게 오히려 집착이 된 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의 자아와 딸의 자아를 구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딸은 이모와 다르고 다른 꿈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저 조금 뒤에서 지켜봐 주면 어떨까. 혹시나 실패하더라도 주저앉아 우는 일이 생기더라고 그럼 그때 가만히 안아주기만 해도 힘이 날 테니.


이모는 실패의 걱정을 하지만 실패할지 안 할지 지금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진 사실 아무도 모른다.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는 17살, 어린 나이에 확고하고 반짝이는 꿈을 가진 야무진 아이라면 혹시 실패하더라도 툭툭 잘 털고 일어나 다시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꾸는 꿈을 응원하고 그 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을 도와주는 게 지금 이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 아닐까라며 내 의견을 전달했다.


이미 자식을 성인까지 키운 다른 이모와 엄마도 같은 뜻이라고 했다. 혹여나 나중에 그때 엄마 말을 듣을걸 그랬다는 말을 듣더라도 결국 딸의 인생이고 딸의 선택이니 우린 그저 한걸음 뒤에서 넘어지면 달려가 안아줄 준비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말했다. 딸이 스스로 그려낸 길을 열심히 씩씩하게 자신의 속도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만 보면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그날 밤을 지새우며 새벽까지 우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모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결국 그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 딸에게 이제 앞으로 결정에 대해 반대 없이 모든 것을 응원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말없이 이모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딸도 딸이 처음이라, 서로를 알고 지낸 기간이 아직 짧아서,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 있지만 개인적인 하나의 객체로서 서로를 존중해주는 법을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와 엄마도 그렇다. 가족이지만 서로 떨어져 산 기간이 길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다시 익히고 있다. 가족이란 건 특히 특별하게 얽히는 모녀관 계란 건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