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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29. 2020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

일상의 흔적 105

1월 20일, 꽤 차가운 바람 하지만 따뜻한 기온. 그건 아마 내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 아닐까

부산에서 반가운 친구가 왔다. 내 여행 일정에 타이밍이 엇갈릴 뻔 했지만 우린 인연의 단단한 끈처럼 결국 만나게 됐다. 포로리를 만나기 전, 기다린다는 말에 다급하게 식당을 찾아 걸어가던 중 멀리서부터 누군가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반가운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포로리와 마주 안았다. 오랜만에 서로의 온기를 느껴본다. 당연할 줄 알았던 이 온기가 내심 많이 그리웠다.


포로리의 남자 친구도 뒤에 있었지만 우린 서로를 눈에 담기 바빴다. 식당에 서둘러 들어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서로의 소개를 할 수 있었다. 포로리의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행복해 보여 다행이었다. 서로를 향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동안 만나지 못하고 흘러갔던 나날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다 문득 더 이상 포로리의 일상 속에 담기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슬펐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시절을 지나,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자주 만나던 시절도 지나고 서로 달라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던 시절도 지났다. 이젠 얼굴을 보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는, 멀리서 서로를 응원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여전히 마음은 누구보다 가까이 닿아 있지만 포로리의 일상에는 내가 없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마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 사실이 아쉬웠다. 독립적이고 자존심도 강해 겉으로는 강한 척을 많이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외로움도 깊은 저 아이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빠르게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내가 아니어도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이젠 내 옆이 아니어도 좋은 사람의 곁에서 안정적이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보노보노를 향한 잔소리가 자꾸 늘어갔다. 연인관계에서 둘이 이미 잘하고 있고 앞으로 갈등이 생겨도 잘 해결할 것을 알면서도, 누구 한 명이 아닌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포로리 편에 서고 싶었다. 포로리의 큰 눈에 눈물이 담기지 않길 바라는 언니의 작은 소망이었다. 일방적인 부탁의 말에도 조용히 들어주는 보노보노가 고마웠다.


그런 내 이야기를 옆에서 같이 듣던 포로리는 "언니는 나보다 더 날 잘 아는 것 같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했다. 살짝 민망해져서 원래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허허 웃고 말았지만 포로리를 많이 아꼈고 우리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포로리를 처음 봤을 땐 작은 섬 같았다. 주변의 다른 기자들과 적당히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그어놓은 선을 넘지 못하게 벽을 두르는 것 같았다. 외롭게 떠다니는 포로리와 친해지고 싶었다. 조금 더 알고 나서는 사실 섬이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울리고 싶고 감정적인 교류를 하며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러다 너무 의지하게 될까 봐 일부러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포로리의 섬에 차근차근 다리를 쌓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포로리의 섬으로 붙지 않으려 노력했다. 크고 맑은 눈 뒤에 눈물을 감추고 사는 이 여린 아이가 놀라서 벽을 만들지 않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 작은 다리를 통해 우린 소통하고 교류하고 많은 부분을 의지 했다. 왜 그랬냐고 물어도 내 대답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외로웠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의지처이자 속에 있던 진심을 꺼낼 수 있는 숲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저 멀리 해가 붉은 빛을 뿌릴 준비를 마친 것이 보였다. 주변에 붉어진다는 건 우리가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장난도 쳐보고 새초롬하게 대하기도 했다.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이었다. 아쉬움은 자꾸 고개를 뒤로 돌리게 만든다. 이러다 더 보고 싶어질까봐 얼른 핸드폰으로 눈을 돌리고 집으로 향했다.


나를 보러 제주도까지 와준 포로리가 고마웠다.

타지보다 더 외로운 고향에서 만난 내 친구.

덕분에 힘이 났고 작은 추억도 한겹 더 쌓을 수 있었다.

2020년 올해 우리 모두 웃는 일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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