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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Feb 14. 2020

누군가의 삶을 돌본다는 것은

일상의 흔적 106

2월 1일 예상보다 더 싸늘한 새벽바람, 그들의 모든 상처를 감싸안는 것.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늘 바빴다.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일어나 법당의 옥수를 갈고 초를 밝히고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나와 아빠가 눈을 뜨면 우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내 등교를 돕고 집안인을 했다. 그러다 해결되지 못한 마음의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손님이 찾아오면 그들을 맞이하고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내가 너무 어릴 때는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 엄만 집안 한 편의 방 안에서 손님을 맞았는데, 그 방에선 누군가 울기도 했고 간절한 염원이 들려오거나 때론 기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긴 시간이 흐르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은 한결 후련한 얼굴을 하거나 당장 해결되지 않은 걱정으로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만 그들이 현관문을 넘어설 때까지 토닥이고 안아주며 그들의 마음을 달랬다.


나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던 그 시절엔 엄마의 일이 가끔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달래주는 엄마는 나에게 쏟을 힘이 없었다. 조잘조잘 엄마에게 하루의 일을 털어놓고 싶어도 피곤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 하던 말을 종종 자주 삼켜냈다. 어떤 날은 새벽에 짐을 챙기고 나가 저녁 늦게 오거나 내려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엄만 나에게 엄마의 일을 깊이 알려주지 않았다. 혹여나 내가 엄마의 길에 발이라도 들어설까 싶어 성인이 되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보지 않게 했다. 성인이 되고서는 부산으로 떠났으니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주 얄팍한 지식이었다. 엄마를 존경하고 엄마의 일을 존중하기에 내가 들어서지 못하게 그어버린 선을 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머물렀다. 


그러다 작년부터 제주도로 내려와 엄마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조금씩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일이라면 단호하게 선을 긋던 엄마는 늙어버린 본인의 몸을 탓하며 종종 도움을 청하곤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정도의 사소한 일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엄마의 일을 지켜보니 어릴 때 엄마의 피곤하고 지친 얼굴을 이해하게 됐다.


대부분의 무속인들은 몸으로 표적을 받는다고 한다. 엄마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들의 현재 몸상태 또는 그들의 조상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지병과 똑같은 증세를 느끼는 것이다. 단순한 통증 그 이상일 때가 많았다. 탁자에 앉아 있다가 혹은 누워있다가도 발이 갑자기 굳거나 허리 통증에 몸을 비틀 때가 많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음이 아팠다.


저려오는 손을 털고 굳어버린 무릎을 다시 펴면서도 누군가 찾아온다는 말에 다시 법당으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그 사람이 집을 나서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의 어깨가 유독 작아 보였다. 새벽기도를 다녀와 누워있는 엄마에게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라고 물었다.


"누군가의 삶을 돌보는 일이지, 그 사람의 삶을 감싸 안고 그들의 상처를 안아주고, 그들의 현생이 편할 수 있게 돕는 것.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편하게 다음 생을 이어갈 수 있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풀어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지."


엄마의 어깨를 안고 토닥였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특별한 엄마의 딸이 될 수 있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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