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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r 16. 2020

제주에서 찾은 그리운 부산의 맛

일상의 흔적 107

3월 13일, 아직은 싸늘한 바람. 잠시 추억에 잠겼던 따뜻한 국밥의 맛

푸른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킨다. 한 달 남짓 이어온 운동 루틴이 제법 몸에 습관으로 남은 것 같다. 분명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씩 더 밝은 하늘을 보게 된다. 조금씩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 같아 괜히 밝아지는 하늘이 반갑다. 가볍게 뜬 눈과 별개로 무겁기만 한 몸을 달래 가며 운동복을 갖춰 입고 하루를 시작한다.


별다를 것 없는 백수의 삶은 좋게 포장해서 여유롭지만 더 파고 들어가면 무료하고 권태로운 느낌이다. 밤낮이 바뀌는 것이 싫어 일부러 아침 일찍 운동을 하며 규칙적인 아침 루틴은 만들었지만 이후의 일들은 사실 무계획이다. 그날그날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꼼질꼼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그러다 갑갑해질 때쯤 운전연습을 핑계 삼아 밖으로 나가곤 한다.


서늘하고 세찬 바람에 놀라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만 뒹굴던 늦은 오후, 친한 이모에게 카톡이 왔다. 제주도에 돼지국밥을 정말 잘하는 식당이 있다며 부산에서 온 분이 사장인 데다 주차장도 넓으니 한번 가보자고 했다. 언제 갈지 날짜를 정하던 우린 더 미룰 것도 없이 오늘 당장을 외쳤다. 추웠던 바람을 떠올리며 최대한 꽁꽁 껴입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국밥집으로 향했다.


제주도에서 와서는 사실 제대로 된 국밥을 먹어보진 못했다. 제주식 돼지국밥과 부산식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맛이 없다기보단 내가 찾던 맛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큰 기대 없이 도착한 가게는 넓은 주차장에 비해 소박한 크기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선 순간 사라졌다. 커다란 솥에 펄펄 끊는 육수와 차곡차곡 쌓인 수육 사이로 그리운 냄새가 풍겼다.


자리에 앉아 빠르게 돼지국밥에 순대를 시켰다. 이미 풍기는 냄새로 내 기대감을 가득 채웠고 빨리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조급했다.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순한 반찬과 국밥이 나왔다.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 가득 양념이 들어간 빨간 국물이 눈길을 끈다. 욕심껏 가득 부추를 올리고 소면을 넣어 뒤적거리다 얼른 국물 한 모금을 넘겼다.


그리운 맛이 났다. 진한 돼지고기의 묵직한 맛과 매콤한 양념, 부추의 향이 어우러진 뜨끈한 돼지국밥. 고개를 들자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모의 얼굴이 보여 결연한 표정으로 엄지 척을 해줬다. 제주에 내려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국밥을 먹은 것 같다. 부산에 몇 년 살았더니 그새 나에게도 돼지국밥이 소울푸드로 자리 잡았나 보다. 고향을 맛을 이제야 찾은 기분이었다.


먼저 밥을 반만 국물에 넣었다. 국물이 밥에 스며들 동안 촉촉해진 소면에 고기를 싸서 먹었다. 속이 따뜻해질 무렵엔 국물과 밥을 먹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깍두기도 한입, 입이 텁텁해질 때면 양파에 된장을 찍어서 한입, 맨밥에 고기를 올려서 한입, 뜨거운 입을 식히기 위해 보들보들한 순대도 한입. 이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솟는다.


코트는 이미 벗은 지 오래, 맨투맨의 팔까지 야무지게 걷어 올리고 말도 없이 우린 돼지국밥을 먹었다. 큼지막한 뚝배기를 어느새 비우고 바닥까지 박박 긁는 소리가 날 때쯤 우린 숟가락을 상에 올려두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스멀스멀 삐져나온 콧물을 슬쩍 닦으며 만족스러운 눈빛을 나눴다. 이렇게 있으니 부산에 있는 기분이다.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괜히 그리운 느낌이 든다.


맛있었냐는 이모의 말에 부산에서 살던 집 근처에 있는 국밥집까진 아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는 말을 했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네에 내 취향에 딱 맞는 단골 국밥집은 가지고 있지 않냐며 웃었다. 여기보다 더 맛있는 집을 가도 아마 나에겐 그 집에 마음속 원픽일 것이다. 고향이 부산인 이모도 이 말에 공감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며 이모는 진지하게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부산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그 국밥집이야말로 진정한 맛집이야. 다음에 부산 가면 거길 꼭 가야 해.

너 거기서 먹고 나면 다른 데 못 갈지도 몰라."

못 말리는 부산 사람의 국밥 부심이라며 놀리긴 했지만 사실 어디서 먹든 돼지국밥은 이 추운 날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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