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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08. 2019

너의 첫인상은 하얀 찐빵 같았다

일상의 흔적 15

1월 7일, 오늘따라 더 발목이 시린 듯한 추위. 막둥이와 즐거운 저녁을 먹었다.

지금 회사에서 막둥이와 하루 차이로 입사하게 됐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자리도 먼 탓에 초반에는 말 섞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점심을 같이 먹고 당시 커피를 좋아했던 상사 덕에 우르르 카페에 몰려가며 말을 조금씩 하게 됐다.


우린 비슷한 듯 다른 사람이었다. 둘 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먹는 방법에 대해 미묘하게 취향이 달랐고 집순이라는 것이 비슷했지만 나가는 것도 좋아하는 나와달리 막둥이는 리얼 집순이다. 하지만 일단 맛집을 좋아한다는 점과 행동이 빠르다는 점이 같아 우린 친해졌다. 게다가 생각이 비슷해 말도 잘 통하니 맛있는 음식만 앞에 있다면 몇 시간이고 즐거웠다.


최근에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 온 막둥이 덕에 우린 종종 저녁을 함께 하곤 했다. 오늘 역시 막둥이가 집에서 가져온 과메기를 얘기했고 바로 막둥이네로 달려갔다. 과메기를 앞에 두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집에서 과메기를 먹는 방법, 어떻게 말린 건지 어디서 구하는지부터 어쩌다 보니 처음 만난 날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내 기억 속 막둥이의 처음은 하얀 찐빵이다. 뽀얗고 동그란 얼굴에 낯가림이 심해 수줍게 웃는 모습이 찐빵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때도 지금처럼 추운 날이라 그냥 보자마자 몰랑몰랑 찐빵이 떠올랐다.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성격도 찐빵처럼 따뜻할 것이란 막연한 추측도 했다. 찐빵은 내가 좋아하는 겨울 간식이니까 나랑도 잘 맞을 것이란 엉뚱한 상상과 함께.


첫 사회생활이라 어리숙하고 직장상사를 대할 때 어려워하는 막둥이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은 더 후에 들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사회생활이라는 틀에서는 도와줄 부분이 많아 보였다. 몽글몽글 여리게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꿋꿋하고 멘탈도 탄탄한 막둥이의 모습을 봤을 땐 대견했고, 회의 중 좋은 아이디어로 칭찬을 들으면 내가 더 뿌듯했다.


이런 모습에 제일 놀란 건 주변 지인들이었다. 원래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잘 없고 대체로 무심한 성격의 내가 누굴 챙기는 모습이 어색하다고들 했다. 막둥이도 언젠가 한번 말했었다. 본인을 잘 챙겨줘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내가 막둥이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도 있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난 막둥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안아준 것 같다. 첫 사회생활, 타지, 홍일점, 나이 많고 기 센 선배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른 체 회사를 다녔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어렸고, 나보다 한참 경력이 높은 선배들도 무서웠고, 바쁜 사수의 틈을 파고들어 질문하기도 어려웠던, 눈치는 어떻게 얼마큼 봐야 할지 까마득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나라도라는 생각으로 더 막둥이에게 편하게 다가가려고 했고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은 알려주고 싶었다. 그때의 나도 막둥이와 같았다. 작은 행동과 말이 신경 쓰였고 질문 하나도 어려워했었다. 당연한 모든 것이 그때의 나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막내를 챙기며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넸던 것 같다.


막둥이는 여전히 나에게 찐빵 같다. 하얗고 몽실몽실하고 따뜻하고 하지만 속에는 본인의 강점을 가득히 품고 있는. 작지만 누구에게나 입안 가득 행복을 주는 찐빵처럼 막둥이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집 탐방 메이트, 우리의 관계가 지금처럼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양쪽 친척들 중 제일 막내인 나는 한 번도 나보다 많이 어린 동생이 없었다. 학교 후배들도 한두 살이었고 주로 언니들이 많았던 내게 막둥이가 신기했던 것 같다. 나이 차이 많은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게다가 다른 부분에서는 고집쟁이면서 내 말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면 바로 수긍하는 모습도 꽤나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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