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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14. 2019

한 잔의 커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일상의 흔적 16

1월 11일, 오랜만에 포근한 날씨. 마음이 담긴 커피를 받았다.

병원에 갈 일이 있어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섰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 회사를 나선 게 너무 오랜만이라 따가운 햇살도 반가웠다. 날씨는 왜 이리 좋은 지 병원을 뒤로하고 이대로 소풍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시간도 넉넉히 나온 김에 오랜만에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탔다.


오후의 하늘은 파랗고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싶었다. 밝은 햇살 밑에서 사람들은 여유로움으로 가득했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내 마음마저 잔잔하게 만들었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묻는 별일 없는 안부에 다들 반가워해줬고 병원 가는 길은 지인들의 연락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간단히 진료를 끝내고 나오니 밖은 여전히 밝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싶어 근처 공원까지 천천히 걸었다. 느긋한 걸음을 내딛고 있을 때 지인에게서 커피 키프티콘이 왔다. 지인은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마시는 커피가 최고라고 했다. 공원을 몇 바퀴 돌다가 지인의 추천에 따라 카페에 앉았다. 카페를 둘러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각기 다른 연령대, 저마다의 목적, 각자의 취향이 담긴 커피. 내 취향인 밀크티를 주문하고 단조로운 풍경처럼 펼쳐진 그곳에 자리 잡았다.


밀크티를 앞에 두고 작은 책을 꺼냈다. 작년에 구입하고 제대로 천천히 읽지 못해 아쉬워만 하던 책을 꺼내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읽었다. 늘 비슷한 일상 속에 작은 여유를 선물해 준 지인의 마음이 감사했다. 묵직한 머그컵 속에 담긴 밀크티에서 한가로운 오후의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밀크티도 다 마시고 책도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지금 이 시간이 끝나는 게 아쉬웠다. 달달한 카페모카를 주문하고는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려다봤다. 푸른 공원이 한눈에 보였고 여전히 풍경은 단조로웠다.  


사람에 대한 기억력이 짧은 나는 상대방의 커피 취향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커피를 앞에 놓고 나면 흐릿하게 혹은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혀가 아리도록 단맛을 좋아해 모카에도 잔뜩 시럽을 뿌리던, 내 첫 대학 동기. 늘 벤티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고 사는 첫 회사 팀장. 카페인에 취약해 늘 허브티나 과일주스를 마시는 내 대학 친구.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내 취향 덕에 커피 입맛도 다양해진 과거의 그 사람. 취향을 강요한 덕에 그린티에 푹 빠져버린 내 오랜 친구.


나에게 커피와 카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에게는 커피가 큰 위로이자 스트레스 풀이 음료였고, 카페는 지인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면 찾는 안락한 아지트다. 방 밖을 나서고 싶을 때면 유일하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취향만큼 다양한 카페를 갔었고 이젠 카페마다 내가 좋아하는 시그니쳐 커피도 만들어뒀다.


담백한 밀크티와 달달한 카페모카에 내 추억이 담겼다. 다른 날 다른 시간에 와서 오늘의 커피를 마신다면 오늘의 추억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한가한 오후, 따뜻한 햇살, 단조로운 풍경, 일정한 소음, 이날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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