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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18. 2019

질투와 의심 사이, 사랑하는 마음이란

일상의 흔적 17

1월 15일, 바람은 차갑지만 나름 괜찮은 겨울. 오랜만에 단골집에 들렀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하루의 끝에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오늘 하루 이렇게 일로만 끝난다는 게 너무나 억울해 회사 막내에게 급 저녁을 제안했다. 점심엔 밥을 먹었으니 저녁엔 밀가루를 먹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오랜만에 단골 파스타 집을 찾았다.


이곳은 정말 우연히 발견한 집이다. 딱히 SNS를 안 하는 나는 주로 지나가다가 냄새나 비주얼로 그날의 식당을 고르곤 하는데 이곳은 내가 딱 좋아하는 가게 느낌이었다. 게다가 흔히 맛집과 카페가 모인 반짝이는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나 약간은 구석진 곳이라 조용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소담한 가게 문을 열자 코끝에 푸근한 향이 맴돈다. 얼른 자리에 앉아 각자 취향대로 메뉴를 골랐다. 작은 규모로 셰프님 혼자 하는 곳이라 대기 시간은 길지만 매일 신선한 재료로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는 곳이라 기다림마저 즐거웠다. 고소한 냄새를 가득 맡으며 우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커트러리를 만지작거리던 막내가 말을 꺼냈다. 어제 남자 친구와 만나던 와중에 별 뜻 없이 남사친에게 연락이 왔고 옆에서 보던 남자 친구가 화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그저 단순한 내용이었는데 왜 연락이 오냐 왜 술 먹었다며 전화가 오냐며 캐묻는 듯한 질문에 덩달이 화가 났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애인이 막내를 너무 좋아한다고 여겼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라면 작은 것도 질투가 나고 괜히 툴툴거리게 되는 게 연애의 투닥이는 맛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런 생각을 조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질투가 막내에겐 좀 과하고 버겁다는 것이다. 일례로 본인 외에 어떤 이성과의 연락도 불쾌해하고 심지어 10년 지기 친구여도 그렇다고 한다. 게다가 만남조차 껄끄러워하며 카톡을 할 때면 옆에서 빤히 본다고 했다. 그러다 무엇인가 본인의 기준에서 과하다고 여겨지는 꼬투리가 발견되면 즉시 화를 낸다고 했다.


이러한 부분이 과연 질투라는 귀여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지 고민해봤다. 난 사랑하는 연인 사이여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존중해야 할 서로의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을 냉정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몇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만나서 한순간에 서로에게 모든 걸 맞출 순 없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을 맞춰가는 과정이나 서로가 지켜줄 기준, 서로를 이해할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난 막내에게 질투와 의심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인이 정말 귀여운 질투로 툴툴거리는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무기 삼아 과하게 사생활을 간섭하고 의심하려 드는지를. 사랑하니까, 연인이니까 라는 말로 모든 걸 다 받아주고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정말 사랑한다면 먼저 서로를 이해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 중심을 맞추는 것이 먼저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은 없다. '그러니 네가 맞춰줘, 연인인데 이것도 이해 못해?'도 없다. '다른 연인들은 다 이렇게 한다던데, 넌 왜 그렇게 못해줘?'처럼 존중 없는 관계는 결코 소통할 수 없다. 어디까지가 서로에게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인지, 사랑이란 단어로 품을 수 있는 문제인지 구분은 참 어렵다.


사랑은 참 어렵고 복잡하다. 질투와 의심, 같은 말 같지만 난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막내의 남자 친구가 느꼈던 그때의 감정은 질투일까 의심이었을까. 여기까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질투, 여길 넘어서면 사랑이란 단어 뒤에 숨은 과한 의심, 명확한 선이 있다면 좀 더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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