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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21. 2019

언제 만나도 늘 그대로인 사람들

일상의 흔적 18

1월 19일, 외투에서 손을 꺼낼 수도 없을 정도의 바닷바람. 전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우리 넷이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이다. 두 명은 같은 회사, 다른 두 명은 각자의 회사, 그러나 같은 불교 안에 있어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우리는 취재 덕분에 매일 만나고 매일 밥을 먹고 서로의 취재 스케줄을 비교하고 알려주며 친해졌다. 불교 특성상 젊은 사람이 거의 없고 40대 혹은 50대가 많다. 경력을 떠나 현역에서 뛰는 기자들 나이가 많아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뭉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똘똘 뭉치고 서로를 이해하며 오랜 기간을 버텼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라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서로를 토닥였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 한계가 찾아왔다. 이곳에 고인물이 되어 나이 많은 저런 기자들처럼 늙어갈까 무서웠던 것 같다. 게다가 나도 처음 열정과는 다르게 게을러지는 것 같고, 더 이상 이 부조리한 시스템에 묵묵히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그만뒀다. 


그렇게 하나둘씩 불교계를 떠났고 지금은 우리 중 단 한 명만이 남았다. 이후로 네 명이 모두 모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소소하게 만났을 뿐 완전체로 모인 것은 처음이라 셀레기도 했다. 어색하진 않을지, 침묵이 맴돌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우린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했다. 별것 아닌 얘기를 하면서도 서로 즐거웠다. 각자의 달라진 삶과 근황을 전하면서도 같이 일하던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거 걸어가면서도 창밖에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도 매서운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즐거웠다.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다 보니 어디를 가도 그곳에 쌓인 추억이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처럼 농담을 하고 장난을 쳤다. 아직 교계에 남아있는 기자는 우리에게 마음 맞는 사람의 부재가 서럽다며 하소연을 했다. 우리끼리 취재를 다니고 붕 뜨는 시간에 소소하게 날리던 드립이 그립다고.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린 우리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생소한 행사에 대한 홍보글을 쓰고, 우리에겐 높은 경지에 있는 스님들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글쓰기의 어려움 이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경력이 있는 기자 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아직은 어리고 불교에 대한 배움이 짧은 우리가 겉돌지 않게 도왔다. 아무런 생색도 없이 취재의 전반적인 정보나 유의사항을 얘기하고 알려줬다.


오랜만에 본 언니들은 여전히 그때와 같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작은 이야기에도 즐거워하고 우리의 농담을 재롱으로 보고 귀여워해줬다. 그날들과 다르지 않게 우리의 지금을 응원하고 그때의 선택에 박수를 쳐줬다.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어느새 밖에 해가 지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랜만에 마음놓고 웃었다. 올해 외로운 순간이 생긴다면 이날의 기억이 포근하게 남을 것 같아 든든하다.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카페로 들어설 때 포근한 공기가 주는 안락함,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뜨거운 밀크티 한 잔, 얼어붙은 귀를 녹이는 음악 그리고 따뜻한 공간에서 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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