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삶 2
엄마의 책을 쓰기로 하면서 이런저런 옛날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모든 걸 정리해서 쓰자고 하니 게으른 내 성품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내 선택은 엄마의 기억을 따라 모든 이야기를 적고, 나중에 편집하는 것! 이렇게라도 하나씩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언젠가 끝에 다다르겠지라는 생각이다. 이번 이야기는 엄마의 중학생 때, 교복에 얽힌 이야기다.
엄마의 첫 교복은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종아리까지 오는 큰 교복이었다고 한다. 당시 모두가 그랬듯이 비싼 교복을 오래 오래 졸업까지 입히기 위해 크게, 최대한 길게 교복을 맞췄다. 하지만 이제 갓 초등학교 졸업한 어린아이에게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그저 다른 언니들 교복과는 다르게 하얀색 칼라가 깨끗했고, 교복 색이 쨍하다는 것 정도.
그런 엄마의 교복은 언니들 중 둘째 언니가 호시탐탐 바꿔 입을 기회를 노리는 귀한 물건이었다. 한번 사면 고등학생 때까지 입는 교복이기에 둘째 언니의 사이즈에 딱 맞았고, 무엇보다 깔끔하고 색까지 예뻤으니, 예쁜 것에 예민한 시기인 둘째 언니에게는 엄마의 교복이 가장 부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둘째 언니의 교복 바꿔 입기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둘째 이모는 몸이 가장 허약했고, 할머니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딸 다섯의 도시락 중 유일하게 둘째 이모의 도시락에서만 귀한 계란 후라이를 몰래 넣었다고 한다. 둘째 이모는 먹을 것에 약한 엄마에게 도시락의 계란 후라이를 보여주며 교복을 바꿔입자고 했고, 깨끗한 교복보단 고소한 계란이 더 먹고 싶었던 엄마는 냉큼 교복을 주었다고 한다.
자주 먹을 수 없는 계란이 도시락에 들어있다니! 엄마는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가는 내내 두근거리는 마음에 빨리 점심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순진한 엄마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꺼내 밥 밑에 슬쩍 들어있는 고소한 계란 후라이를 먹으며 행복했고, 무엇보다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둘째 이모는 딱 맞는 교복에 새하얀 칼라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며 즐거웠으니 사실 서로 윈윈이 아닐까.
한동안 할머니는 이 두 딸이 모종의 거래를 하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갓 입학해서 새 교복을 샀던 아이가 누런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마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몸이 약해서 몰래 챙겨주던 계란을 건강하고 활발했던 엄마가 다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꿀밤을 먹이며 혼냈지만, 몰래 이루어지는 거래를 막을 순 없었다.
엄마가 학년이 올라가 혼자만 누렇고 색이 바랜 교복을 입는다는 것을 깨닫고 계란 후라이를 거절할 때까지 이 거래는 계속되었고, 곧 학교를 졸업하자 교복은 어느 창고로 들어갔다가 다른 옷으로 탄생하며 이 거래는 끝이 났다.
새하얀 칼라와 쨍한 교복 vs 고소한 계란 후라이, 어떤 것이 더 큰 행복일지는 각자 다 다르겠으나 나도 엄마의 딸인지라 교복보단 계란 후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