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견디는 힘

가장 기본적이고 흔한 그 커피

by 송송

카페 일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된 커피는

아메리카노였다.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흔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쉽게 주문하는 커피. 그래서 처음에는 아메리카노가 이렇게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음료일 줄은 몰랐다.


원두를 담고, 곱게 갈고, 탬핑을 하고, 짧은 순간 집중해서 샷을 추출하는 일. 겉으로 보면 단순한 반복 같았지만 막상 해보니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감각이 필요했다. 같은 원두에 같은 기계를 쓰고, 같은 레시피를 따라도 내리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


누군가의 커피는 조금 더 부드러웠고, 누군가의 커피는 조금 더 진했고, 누군가의 커피는 좀 더 씁쓸한 맛이 따라왔다. 어떤 날의 내 커피는 괜히 떫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큼 고르게 잘 나왔다.


그걸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단순해 보이는 것일수록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커피 한 잔에도 손끝의 집중과 마음의 온도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어쩐지 나는 그 사실이 좋았다. 누가 봐도 화려한 메뉴는 아니지만, 늘 가장 많이 찾는 커피.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에 더 자주 선택되는 커피. 그래서인지 아메리카노는 어딘가 삶과 닮아 있었다. 크게 눈에 띄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를 묵묵히 지탱하는 것. 내가 건넨 한 잔이 출근길 누군가의 정신을 깨우고,

지친 오후를 버티게 하고, 잠깐의 여유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괜히 마음이 따뜻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랬다. 문을 열자마자 퍼지는 고소한 커피 향을 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깨어났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볼 힘, 오늘보다 괜찮은 내일을 꿈꿔볼 힘. 나에게 커피 향은 늘 말없이 그런 마음을 데려왔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라고 생각했던 날에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만들며 작은 성실함을 배웠다.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정성을 다하는 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도 조금 더 나아지려는 마음. 그런 것들이 모여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된다는 것도.


삶은 거창한 변화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익숙한 향기 하나, 정성껏 내린 한 잔, 묵묵히 해낸 오늘 하루 같은 것들이 우리를 다시 내일로 데려간다는 걸. 그리고 어떤 날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그 모든 시작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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