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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r 06. 2019

삶을 대하는 태도, 온전한 책임

일상의 흔적 31

3월 2일, 봄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 14년 만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가 아마 중학교 시험 끝난 기념이라고 기억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지브리에 대해 딱히 감흥도 없을 때였다. 그때 본 하울은 잘생겼었고 당차고 야무진 소피, 귀여운 마르클과 캘시퍼 딱 그 정도 감상만을 남겼었다.


그러나 다시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느낌이 달랐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포인트가 보였다. 아마 그건 14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가진 가치관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내 생각에) 이젠 작은 실수에도 헤헤 웃으며 넘어갈 나이는 아니며 조금은 제멋대로 굴던 때도 지났고, 스스로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 당시 감동했던 하울의 첫 등장도 공중에서 발을 구르며 걷는 장면도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소피의 등 뒤에서 동생이 외쳤던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마음에 박혔다. 아무 생각 없이 넘겼던 그때 그 말은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의 길에 섰을 때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나열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이루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선택에 있어 주체는 나였기에 그에 파생되는 어떠한 결과도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끔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 피하고 싶거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으로 숨고 싶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 삶의 주체자가 누구인지를 상기시켰다. 


이외에도 소피가 한순간에 늙은 본인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하울을 사랑하는 소녀로의 기억을 완전히 바꿨다. 소피는 할머니가 된 본인의 모습에 낙담하거나 비관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토닥였고 상황에 대해 진취적으로 나아갔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소피가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펼치거나 솔직해질 때면 다시 젊음을 되찾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삶을 대하는 주체자로서의 빛나는 모습을 보며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도 저렇게 어떤 상황에서든 내 신념을 올곧게 펼칠 수 있을까.


참 아이러니하다. 개봉한 지 15년이 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현재를 살아갈 지혜를 깨닫는다는 것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인생의 회전목마' OST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돌고 도는 회전목마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것 같은 인생도 결국 돌고 돈다는 뜻일까. 내가 느끼지 못했던 선행도 악행도 인연도 악연도 모든 삶을 돌고 돌아 언젠가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는 의미 같다. 다시 들어보니 살짝 무서운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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