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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r 25. 2019

자취생을 위한 오랜 친구의 선물

일상의 흔적 38

3월 22일, 시작된 꽃샘추위. 제주도에서 친구가 놀러 왔다.

슬이가 처음 부산에 놀러 온 것은 내가 자취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아직 나도 부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딱히 친한 친구 역시 없던 터라 너무 반가운 일이었다. 두 제주소녀는 관광객이 되어 부산 곳곳을 돌아다녔었다. 혼자서는 가볼 용기가 없던 곳부터 TV에서만 보던 맛집까지 길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여행했다.


벌써 7-8년 전 일이지만 그날의 추억은 늘 마음 한구석에 가장 유쾌한 여행으로 기억이 남는다. 아직 부산이 어색한 섬 소녀지만 친구 앞에서만큼은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싶어 했고, 친구는 그런 내 노력을 고마워해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책 없는 여행이었고, 어렸던 우리이기에 웃고 넘어갔던 일들 투성이었다.


둘 다 특별한 계획이 없으니 첫날부터 좌충우돌이었다. 버스를 반대로 타기도, 검색해서 간 맛집이 정말 맛없는 곳이기도, 조개구이를 먹으러 태종대 가는 길에 파업 시위로 인해 한 시간 동안 버스에 갇혀있기도 했다. 게다가 여행이 끝나기 전날에는 급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도저히 밖을 나설 수 없었다. 그럼에도 우린 근처 마트에 달려가 음식재료를 사 왔고 즐겁게 부침개를 만들었다.


이때의 기억은 슬이가 늘 부산에 오고 싶은 큰 이유가 되었고, 드디어 부산에 놀러 왔다. 부산에서 만난 슬이가 반가웠고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맛집 리스트와 카페를 뽑아 투어를 하기로 했다. 어렸던 그날처럼 많은 곳을 가진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깊은 풍미를 가진 카페를 돌아다니며 디저트를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별거 아닌 나날로 3일이 금방 흘렀다. 막상 슬이가 가는 날이 되니 좀 더 무리해서라도 이곳저곳을 가볼 것을 후회가 남는다. 슬이는 이 핑계로 다음을 기약하면 되니 괜찮다고 했지만 나 스스로에게 바보라고 화가 나기도 했다. 공항으로 가는 슬이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며 다음엔 더 괜찮은 부산 가이드가 되길 결심해본다.


(내 인생 첫 애플망고는 슬이가 처음 놀러 온 날 사다준 애플망고였다. 자취생이라 과일을 잘 먹지 않을까 봐 사 왔다고 했다. 망고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여서 고맙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폭우 내리던 날 집에서 애플망고를 하나 까먹을 땐 우리 둘 다 별세계를 맛봤다. 세상에 이렇데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일이라니! 껍질과 두꺼운 씨앗에 붙은 과육도 아까워 열심히 긁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망고 시즌이 되어서 사 먹으려고 보니 가격이 정말 비싸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날에 이어 이번에도 애플망고를 사 왔다. 하나씩 먹을 때마다 이번 여행의 추억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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