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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18. 2018

당신은 나의 자부심이다

일상의 흔적 5

12월 18일, 드러낸 발목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의 추위.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와 난 여느 모녀처럼 친구 같은 사이다. 어린 날의 나를 챙겨주던 엄마처럼 내가 엄마를 챙기게 된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어린 내가 자랑하고 싶어 일부러 엄마에게 질문을 던지면 엄만 답을 알면서도 입을 달싹거리는 내가 귀여워 모른 척을 했단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엄만 이제 진짜 모르는 것이 많아져 물어보거나 내 답을 기다린다.


어린 나와 손 많이 가는 남편을 챙기며 사느라 친구들의 모임에 한번 가기도 어려웠던 날들이 지나고 엄마도 자유를 찾았다. 부쩍 친구들과의 모임도 간단한 술자리도 찾아다니며 엄마의 인생을 찾아가는 것 같아 모든 것이 흐뭇했다. 엄만 늘 술에 취하면 멀리 사는 딸에게 전화를 한다.


"딸 뭐해? 밥은 먹었어?"


몇 시에 전화하던 같은 것을 물어본다. 귀찮음이 많은 딸이 혹시나 굶을까 걱정해서 일까. 엄마에겐 내가 밥을 먹지 않는 것만큼 걱정스러운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날 엄마도 기억 못 했던 그 어느 날, 엄만 그날따라 유독 이런저런 말을 어렵게 하더니 조심스러운 말을 전했다.


"딸 잘 커줘서 고마워.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줘서 고맙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엄마 직업을 당당하게 말해줘서 엄마 늘 고마워 알지?"


잘... 안다.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하던 말이다. 하지만 듣는 순간 코가 시큰하고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엄마가 어느 한순간에도 자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늘 엄만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자 사랑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엄만 내가 어릴 때 종종 학교에 오는 걸 꺼렸다. 학부모 모임이나 참관수업에도 내가 와달라고 하루 종일 옆에서 종알거려야 발걸음을 하곤 했다.


무지했던 시절엔 바빠서라고 생각했다. 늘 와줬기에 서운하진 않았지만 의문스러웠다. 성인이 되던 날 엄만, 일반적이지 않은 당신의 직업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엄만 무속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바빴고 일하는 곳을 따라가 보지 않아 실제 굿하는 모습은 성인이 돼서야 처음 봤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엄만 본인의 직업을 내가 부끄러워할까 봐 늘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맹세코 단 한순간도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가족을 지키고자 기도하는 모습도 무거운 짐을 이끌며 며칠이고 일을 떠나는 뒷모습도. 늘 기도해주는 엄마 덕에 큰 사고도 없이 무사히 건강하게 잘 컸다. 어둡고 무서운 세상 속에서도 엄마라는 밝은 등불을 옆에 두고 살았다. 엄마의 고생 덕분에 어려움을 모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고, 묵묵히 지켜주는 엄마의 등에 기대 걱정 없이 살았다.


엄마는 나의 자부심이다. 내가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던 이유고, 누구보다 밝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다. 엄마는 내가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고 했다. 나에게 엄마는 세상을 사랑하는 이유다. 엄마가 내게 가늠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주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줬기에 사랑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 덕분에 꿋꿋이 세상을 살아가는 단단한 마음이 생겼어.

세상에서 나만큼이나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매일매일 모든 순간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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