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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20. 2018

언니는 나에게 항상 멋진 사람이다

일상의 흔적 6

12월 20일, 포근한 겨울. 그냥 우리 언니 생각이 났다.

언니랑은 알바를 하던 영상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21살, 24살 풋풋했던 20대 싱그러웠던 시간이었다.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우리가 지금처럼 친해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 첫인상은 예뻤고 말이 별로 없었고 말갛게 웃는 모습이 순수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냥 흘러갈 것 같던 우리 관계는 내가 언니가 다니고 있는 대학 같은 과로 편입하면서 진전됐다. 낯선 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봤을 때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언니가 졸업하기까지 1년의 시간을 언니 덕분에 즐겁고 활기찬 대학생활을 보냈다. 점심에 자주 가던 닭집도, 쉬는 시간 간단하게 커피를 사서 마셨던 매점도, 종종 공부를 핑계로 바람을 쐬던 야외테이블도, 밤에 몰래 불러내 술을 마셨던 언니의 동네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이렇게 언제까지 청춘일 것 같은 시간도 흐르고 언니는 한 남자의 아내가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처음에 언니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와 갑작스러운 선물이 찾아와 엄마가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조금 아쉬웠다.


언니는 자아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다. 용감한 사람이고 하고 싶은 일을 말할 때 누구보다 눈동자가 빛나던 사람이다. 못내 펼치지 못한 언니의 꿈이 목에 걸려 그저 웃었다. 언니도 늘 이 부분을 아쉬워했다. 아이가 어렸을 땐 육아와 살림에 바빠 여유가 없었지만, 여유가 생긴 요즘에 부쩍 회사 일에 대해 묻고 궁금해했다.


사실... 언니도 알고 있겠지만 원하는 곳에 도전하기엔 조금 늦은 나이다. 언니가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땐 그저 아쉬운 마음에 도전이라고 해볼까 하는 마음인 줄 알았다. 언니의 도전에 응원하며 해 보라고 부추겼다. 나중에서야 누구의 아내, 엄마보다 언니 자신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그냥... 육아랑 살림은 다들 그저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

나도 하고 싶은 일 많았는데, 할 수 있는데... 능력이 없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나 봐."


언니의 말에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육아와 살림이 쉽냐고, 누구나 하는 쉬운 일이면 본인들이나 집에 가서 일하지 왜 밖에 나가느냐고, 제대로 집안 살림해보지도 않고 말만 쉽게 한다고. 미안해서 그랬다. 언니의 생각을 알고 깊게 공감하고 이해해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언니의 고민을 가볍게만 여긴 거 같고 일을 하면 육아와 살림까지 떠맡게 될 상황을 나조차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용기를 주고 싶었다. 늦은 나이여도 해보라고, 더 늦어서 후회하기 전에. 언니가 말했던 우리 인생에 제일 젊은 오늘처럼 언니가 하고 싶은 길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언니는 나에게 항상 멋진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이지만 그저 언니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라고 용기를 주고 싶다.


이름 앞에 혹은 뒤에 붙는 어떤 수식이 없어도 좋은 사람이다. 언제든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언니의 둥지를 찾고,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언니의 가족 사이로 스며들고 싶은, 그저 좋은 사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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