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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24. 2018

내 인생 첫 크리스마스 선물

일상의 흔적 8

12월 24일, 이브 맞이 반짝 추위.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이 떠올랐다.

사무실에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나름 트리임을 내세우는 쪼꼬미 루돌프에 전구를 두르고 선물을 달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뭔가 부족해 보이는 곳에 내용물 없는 선물상자까지 세워두고 나니 나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첫 선물이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건전지 피아노, 콩순이 옷장세트 등 다들 순진했던 어린 날 밤에 산타가 놓고 간 선물을 발견하고 좋아했던 기억을 얘기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무심한 이모가 산타는 없다고 일찍이 알려준 덕에 난 다소 시크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집안 분위기상 크리스마스를 잘 챙기지 않아 딱히 기억에 남는 날은 아니었다.


그런데 뿌옇게 흐린 어린 날을 비집고 선명한 색으로 빛나는 기억이 떠올랐다. 우연히 날짜가 겹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우겼던 내 인생 최초의 두 발 자전거.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내게 두 발 자전거는 어른의 세계였고, 더 멀리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구실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엄마와 나는 일대일 자전거 레슨을 시작했다. 바쁜 엄마의 시간을 잠시나마 독점한다는 것은 어린 나에게 두 발 자전거의 무서움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기쁨으로 씰룩이는 볼을 붙잡고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연습했다.


하지만 좀처럼 실력이 나아지지 않았다. 뒤에서 든든히 붙잡아주는 엄마가 있어도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발을 구르지 못했다. 게다가 계속 허리를 굽히고 있는 엄마에게 미안해 마음도 조급했다. 제대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 결국 울먹이며 자전거 탓을 했다.


"자전거가 이상해, 고장 난 것 같아. 안 할래 집 갈래..."


"딸 괜찮아, 무서워서 그렇지? 무서운 건 당연한 거야. 엄마도 처음엔 그랬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내가 해보지 않았고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한 번에 잘해.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지금 조금만 울고 다시 해보자."


평소라면 울먹이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바로 돌아갔을 텐데 이 날따라 엄만 엄한 얼굴로 다시를 반복했다. 무섭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국 그날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공터를 한 바퀴 돌고 온 나보다 더 기쁜 얼굴로 환하게 웃는 엄마 얼굴을 보고 나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날 난 자전거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마음에 커다랗게 자리 잡았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 모든 처음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내게 세상을 가르쳐주었다. 그중 제일 큰 가르침은 두려움을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엄마는 두려움을 인정하되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처음은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힌다. 현실의 벽이 높아 보여도 망설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두려움을 이겨내는 더 큰 용기를 낸다. 살면서 '용기를 내볼걸'이라며 후회할 것 같은 일은 무조건 해본다.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어릴 때 엄만 내가 무엇을 하던 박수를 치며 잘한다고 안아주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면 난 내가 어떤 것도 다 해내는 영웅이라도 된 것 같았다. 다 커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지금도 용기가 필요할 땐 엄마를 찾는 아이가 된다. 문득,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엄만 누구에게 기대 용기를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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