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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07. 2019

"내가 부산에 가는 이유는 너야"

일상의 흔적 48

5월 4일, 반팔과 재킷을 오가는 일교차. 서울에서 반가운 친구가 놀러 왔다.

긴 휴일의 시작이었다. 별 뜻 없이 오가던 카톡에서 친구는 충동적으로 부산여행을 계획했다. 고민의 시간도 없이 기차표를 예매하고 더 빠른 기차, 최대한 늦은 시간의 기차를 예매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면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친구는 '그냥 너 보러 가는 거야, 뭐 안 해도 돼'라고 말해줬다. '내가 부산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너'라는 뜻을 전했다.


누군가 나를 보러 먼 거리를 머뭇거림 없이 와준다는 것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오로지 나를 만나기 위해 여러 귀찮음을 감수하고 긴 시간을 이동해서 와준다는 것에 고마웠다. 친구의 말대로 우린 특별한 무언가는 하지 않았다. 도착한 날은 미뤄둔 앤드게임을 보러 갔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느긋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초조해하는 나에게 친구는 어깨를 토닥였다. 좋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러 왔으니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이야기만 해도 널리고 널린 프랜차이즈 피자를 먹어도 좋다고 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저 헤헤 웃고 말았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했다.


부산에 왔으니 탁 트인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날도 좋으니 같이 걷고 휴일의 부산을 즐기러 해운대로 향했다. 우린 끝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주제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끝없이 생겨났다. 이런 맥락 없는 대화도 친구였기에 재밌었다. 소품샵을 돌며 마트에도 있는 흔한 간장을 사고, 바닷바람에 덜덜 떨면서도 하얀 아이스크림을 먹고, 맛집을 돌아보다 지쳐서 흔한 돈가스를 먹었다.


사람 관계에 치이고 지쳐 우울했던 나에게 친구의 깜짝 방문이 또 다른 휴식으로 다가왔다. 친구와 놀던 이틀의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웃고 티격태격하고 또 웃고 서로를 놀리며 지나갔다. 부산역을 향하는 버스를 타고서는 못내 아쉬움이 들었지만 담담하게 굴었다. 떠날 준비를 마친 기차를 앞에 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안녕, 다음에 또.


너를 처음 봤을 때 순하고 착해 보여서 눈길이 갔다. 항상 강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할 때라 착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너의 모습에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작은 심술과 억지에도 툴툴거리면서 결국 들어주는 너의 모습에 날카로웠던 가시를 하나둘 내려놓았다.

불규칙하게 주고받는 연락에도 대화는 항상 재밌었다. 늘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어리광 부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너라는 것에 감사했다. 나조차 내 모든 것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괜찮다고, 좋다고 말해주는 너에게 위로를 얻는다.

쑥스럽고 오글거려 제대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지만 아직 직접 얘기할 용기가 나지 않아 이곳에 글을 남긴다. 이 글을 읽을지 읽지 않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좀 더 용기를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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