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May 10. 2019

때론 꽃 한 송이에도 기분이 말랑해진다

일상의 흔적 50

5월 8일, 반팔은 춥고 긴팔은 덥고. 날씨 따라 살랑거리는 기분

날씨가 좋았다.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푸른 하늘이 반가웠고 살랑이는 바람에서 풍기는 풀내음도 좋았다. 오늘의 기분을 기억하기 위해 꽃 한 송이를 사고 싶었다. 어떤 꽃이 있는지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몰라 가게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친절한 주인분의 안내로 일단 가게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꽃을 가리켰다. 손끝으로만 만져도 보드라운 보라색 꽃. 많이 사긴 부담스러워 딱 한송이, 가장 활짝 꽃잎을 펼친 꽃으로 골랐다. 나른한 봄의 기운은 이렇게 가끔 충동적인 일도 기꺼이 하게 만든다.


바스락 거리는 종이에 포장된 꽃을 들고 걸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퇴근길에 달라진 점이라고는 작은 꽃 한 송이뿐인데 기분이 말랑해진다. 걷다가 무심코 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생명을 머금은 보라색 꽃에서 어쩐지 나만의 봄을 만난 기분이다.


막상 집까지 들고 오니 이 생명을 둘 곳이 없어 우왕좌왕이다. 급한 대로 깊은 유리잔에 물을 채워 창가에 세웠다. 어느새 밖은 노을이 내려앉고 삭막했던 창가엔 보라색 생명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쩐지 평화로운 기분이 들어 창가에 가만히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사실 내 의지로 돈을 들여 꽃을 사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진 얼마 살지 못할 식물을 굳이 내 방에 두고 죽으면 버리는 일이 하기 싫어 지나가면서 보는 정도에 만족했다. 그러나 충동적인 오늘의 선택 덕분에 왜 꽃을 사서 꽃아 두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다.


작은 방, 책으로만 가득한 책장, 딱딱해 보이는 가구. 삭막해 보이는 풍경 사이로 살랑살랑 꽃잎이 흔들린다. 겨우 한송이뿐이지만 어쩐지 웃음이 난다. 우리 집에 찾아온 작은 봄, 계절이 바뀌면 그때마다 다른 꽃을 끼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부산에 가는 이유는 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