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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13. 2019

도시락에는 늘 설렘이 담긴다

일상의 흔적 51

5월 12일, 완연한 초여름 날씨.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설렘이 있다.

이유라면 이유, 날씨가 너무 좋았다. 친한 언니를 꼬셔 근처 시민공원으로 소풍을 계획했다. 먹을 걸 사서 갈지 간단하게 만들어갈지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작은 돗자리를 구하고 도시락 메뉴를 정하며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꼽자면 역시 가족들과의 소풍이다. 물론 예쁜 돗자리나 나무 바구니에 담긴 영화 같은 음식은 없다. 은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돗자리와 5단짜리 큰 도시락통에 투박하게 담긴 음식, 크게 크게 썰린 과일이 있을 뿐이다. 물론 난 여전히 이 투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엄마의 나들이 음식을 좋아한다.


도시락의 구성을 늘 비슷하다. 첫 번째 칸에 담긴 김밥, 두 번째 칸에 담긴 유부초밥, 세 번째 칸에는 곁들여 먹을 반찬, 가끔 미니 돈가스(혹은 짭짤한 햄)가 네 번째 칸을 채우고 마지막 칸은 늘 숭덩숭덩 잘려 껍질이 붙은 과일. 어떤 음식이 담긴 줄 알면서도 늘 한 칸 한 칸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가슴이 설렘으로 콩닥거렸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와 도시락까지 만들어 소풍을 떠난 일이 성인이 되어 처음인 것 같다. 무엇인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던 탓에 소풍을 가도 늘 배달을 시키거나 사서 갔다. 급하게 구입한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손에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아기나무들을 지나 겨우 앉을만한 공간을 찾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었지만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제일 쉬운 주먹밥과 샌드위치, 과일로 구성된 도시락은 신나게 흔든 덕분에 블랙홀이 되었다. 이리저리 섞여 창의적인 모양을 뽐내는 밥을 떠먹고 샌드위치를 다시 조합하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흘렀다. 요리 바보가 만든 첫 도시락은 망했지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으니 만족스러운 시도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고픔은 아주 훌륭한 거짓말 장치다. 막돼먹은 밥과 샌드위치가 의외로 굉장히 맛있었다. 스스로의 실력을 의심하며 빠르게 도시락을 비우고 그대로 누웠다. 챙겨간 블루투스 스피커를 살짝 켜놓고 눈을 감았다.


흩날리는 바람, 촉촉한 풀냄새, 기분 좋은 배부름, 사람들의 웃음소리.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불러보다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무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오전부터 부지런하게 소란 피운 보람이 느껴지는 한낮의 여유로움이었다.



(다음에는 엄마에게 음식을 배워서 더 맛깔스럽고 가능하다면 예쁜 도시락을 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는 금손인데 왜 나는 물려받지 못했을까. 언젠가 그날이 될 때까지 실력을 키우지 못하면 역시 공복으로 만들어서 데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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