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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15. 2019

열정과 야근의 상관관계

일상의 흔적 52

5월 14일, 완연한 여름 그 자체. 열정이 없다는 말에 숨은 의미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가장 먼저 바쁜 사람은 작가다. 디자이너보다 먼저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캐치해 원고를 써내고 조율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계약을 마치고 스케줄이 나올 때마다 야근 여부와 디자이너의 앙탈 지수를 두고 긴장을 한다.


이번 계약은 야근 지수 보통 혹은 조금 많음, 디자이너 앙탈 지수는 높음이었다. 생각보다 더 촉박하게 돌아가는 일정에 아직 시작도 못한 원고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다독였다. 역시나 첫날은 야근. 그나마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른 퇴근을 했고 작가 둘과 디자이너 한 명만이 넓은 사무실에 남았다. 물론 달달한 커피와 함께.


집중모드가 되어 입을 쭉 내밀고 원고를 쓰던 중 앞에서 계속 디자이너가 한숨을 쉬었다. 마치 나 좀 봐줘, 말 좀 걸어줘라는 듯. 기싸움에서 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일이 잘 안 풀려요? 왜요~? 뭐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제가 꼰대인가 싶어서요.

난 요즘 애들이 생각이 좀 짧은 거 같아요. 그냥 제가 꼰대인가 봐요."


긴긴 말 끝에 그 디자이너의 숨은 뜻은 '촉박한 일정이지만 디자인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선배인 나도 남았는데 아직 틀만 잡아놓고 후배인 사람들이 가니 화가 난다. 요즘 애들은 참 열정도 없고 의지도 없다. 저러다가 대충 해올걸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다'였다. 더 짧게는 나보다 빨리 가다니 화가 난다.


반박하고 싶은 생각을 최대한 눌러 참고 열정과 야근은 별개이고 본인들만의 스케줄이 있을 텐데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라는 최대한의 친절한 멘트를 했다. 앞에서 1시간째 책상이 녹아내릴 것 같이 한숨을 쉬고 있으니 나도 더 이상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좀 전의 멘트를 양쪽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먼저 선배 디자이너. 그분의 입장에서는 아마 강한 책임감 때문 일 거라 생각했다. 일정이 촉박했고 본인은 가장 연차가 높았고 첫 클라이언트였기에 부담도 컸을 것이다. 조급한 일정에 요구사항까지 모호해 본인은 고민도 많고 걱정이 큰데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후배들의 모습이 실망스러웠을 수도.


그리고 후배 디자이너. 이분들은 그저 자신의 계획이 따로 있는 게 아녔을까? 당장 오늘은 컴퓨터를 아무리 보고 있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효율성을 위해 쉬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푹 쉬고 맑은 정신으로 출근해 머리를 쥐어짜 내고 디자인을 뽑아내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집 가는 길에, TV를 보다가 혹은 씻다가 툭툭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양쪽의 입장은 모두 각자 일하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말은 열정도 의지도 없다는 말. 움직이지 않는 손과 굳은 머리를 붙잡고 뭔가 나올 때까지 야근하고 엉덩이를 붙여놓는 게 열정이라면, 그까짓 거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 열정과 의지를 강요하는 것일까.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상사가 먼저 퇴근하기 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게 그 사람의 사회생활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인 걸까. 난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쪽이다. 야근을 길게 해서 성과물이 좋았던 능력껏 컨디션을 조절해서 성과물이 좋았던 어떤 방식이든 좋으면 그만 아닌가.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효율적인 일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계획이나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고 상사의 눈치를 보고 상사보다 무거운 엉덩이를 지녀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열정이라면? 글쎄, 열정 같은 소리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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