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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16. 2019

너의 '다음'이 언제나 날 기다려줄까

일상의 흔적 53

5월 15일, 여름의 중턱에 있는 듯한 더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어렴풋한 새벽임에도 눈이 번쩍 뜨였다. 생생하지만 너무 이상한 꿈을 꿔서 다시 누워 잠을 청하긴 싫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해 기억나는 대로 꿈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집에 낯선 손님이 들어와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 우리 강아지가 생기발랄한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내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쳤다는 내용.


이젠 제대로 걷지도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이가 꿈에선 까만 눈망울로 나를 똑바로 봐주고 뛰어다니는 걸 보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들키고 싶지 않아 괜히 잠이 덜 깬 척을 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엄마는 다독이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야미가 이제 갈 때가 됐나 보다.

내가 언니만 보고 가자했더니 기다려줄 모양인가 봐.

이번에 내려오면 같이 시간을 보내주자, 조용히.

너무 나이가 많아졌으니 우리도 늘 마음의 준비했었고, 그렇지?"


알고 있었다. 내게는 아직 작은 아기 같지만 점점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들으니 시간이 더 이상 길게 남지 않았다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좀 더 빠른 시간으로 알아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복잡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곧 갈 거니까 다음 달에 갈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게 여전히 '다음'이라는 기회가 남아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달 당장 이번 주가 아닌 다음 주 혹은 다음 달, 여전히 우리 강아지는 날 기다려줄까? 내가 너무 안일한 건 아닐까, 내게 늘 따뜻함을 나눠주던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지? 가는 길, 날 보지 못한 미련이 남아 머뭇거리면 어떻게 하지?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난 왜 여전히 다음을 기약할까. 왜 늘 소중한 사람들이 먼저가 되지 않고 다음이 될까. 왜 난 그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까. 누구에게나 '다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은 그저 편하고 싶은 내 이기적인 변명이다.


늘 기억해야 한다. 소중한 존재가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옆에 모든 이들에게 항상 '다음'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변명하듯 떠밀린 '다음' 대신 미련 가득한 '후회'가 올 수도 있다. 멋대로 다음으로 미룬 내 친구가 날 떠나갈 수도 있고, 다음으로 미루다 흘러간 시간 속 내 기억보다 더 늙어버린 부모님을 마주할 수도 있다


'다음'을 기약하지 말자.

지금은 늘 늦지 않았다. 어설픈 변명을 넣어두자.

어떻게 흐를지 모르는 운명에서 지금을 살자.


자는 척하는 내 옆에서 같이 잠들어버린 사랑둥이. 이렇게 편하게 잠든 모습만 바라봐도 행복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2016년 포근한 그 겨울


(산다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어렵다. 어릴 때는 수많은 경험이 쌓인 만큼 더 쉽고 성숙해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는 건 더 어렵다. 이상적인 내 모습과 현실적인 내 모습의 괴리감에 좌절하기도, 옳은 선택을 두고 현실에 타협하는 척 이기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괜한 자책감에 좌불안석이다. 어떤 선택으로 내 삶을 채워야 할까, 오늘도 고민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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