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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n 05. 2019

'우린 친하니까'는 이기적인 변명이다

일상의 흔적 57

5월 25일, 포근한 날씨. 친한 사이에 이해란 어디까지일까

좁고 깊은 인간관계가 좋다. 더 어렸을 때는 연락처에 빼곡하게 들어온 친구 목록이 뿌듯했었다. 금요일이면, 주말이면 늘 여기저기 연락이 오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 재밌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상황이 변하면서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이번 주말은 조용히 보내고 싶어 집에서 책을 읽을 때였다. 대학부터 알고 지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면 '일요일에 선약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니 만약 선약이 깨지면 만나자'였다. 이 카톡을 읽자마자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난 정말 이런 식의 약속을 싫어한다. 선약이 이루어질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게다가 몇 시에 볼지도 알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려 달라는 것일까. 마치 나를 대타처럼 여기는 이 말이 내 기분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종종 이런 식으로 약속을 잡으려 하는 이 친구에게도 나와 친한 다른 친구에게도 이런 식의 약속이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이유에서 만나던 '만나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시간 때우듯 만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러 나간 김에 겸사겸사는 싫다. 난 상대방에게 '그냥 만나는 아무나'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듯 상대방도 나에게 친한 만큼 예의를 다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 부탁을 제대로 듣지 않고 계속해서 이런 약속을 잡는 친구에게 조금 실망했다. 요즘 사람에게 지쳤다는 말이 어떤 건지 깨닫고 있다. 점점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 유독 친구라는 이름으로 날 지치고 때론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친구, 친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수용해야 하는 걸까. 진정한 친구라면 나에게 이렇게 행동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친하다는 건 우리 사이에 거리낄 거 없이 모든 선을 넘나들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매너 있게 보이고 싶어 지키는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친한 사인데 뭘'이라고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우린 친하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는 정말 이기적인 변명이다.


이런저런 생각이나 고민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친한 사이지만 예의를 바라는 내가 너무 관대하지 못한 걸까.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무례이고 어디까지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인 걸까.


'친한'사이에도 유지해야 할 적정거리를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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