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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n 07. 2019

지나온 모든 순간에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일상의 흔적 58

6월 4일, 강한 햇볕과 더위. 아무것도 아니었던 과거는 없다.

2주에 걸쳐 6일간 이어졌던 외근의 마지막 날이다. 출판물 제작을 위해 2주간 대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내 모교도 아닌 곳에서 단 6일간의 시간이었는데도 학교와 정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학교의 모습을 여러 번 눈에 담았다. 흩날리는 푸른 나무, 햇살, 경사진 계단, 반짝이는 웃음소리, 수업시간에 맞춰 다급 해지는 발걸음.


학교를 떠난 시간이 별로 되지 않는대도 불구하고 대학교를 떠올리면 괜히 아득한 과거를 떠올리는 느낌이다. 같이 일을 하던 담당자님이 내 대학생활에 대해 물었지만 사실 말해줄 것이 별로 없다. 뚜렷한 추억도, 특별한 활동도 없었던 내 대학생활은 평범 혹은 그 이하였다.


대학 시절에 난 의욕 넘치는 학생은 아니었다. 뚜렷한 꿈이나 확고한 목표가 없었고 평일과 주말 모두 알바에 바빠 수업 외 시간엔 흥미가 없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수많은 대외활동, 공모전에도 참가해본 적 없는 그저 대학생이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의 대학 생활을 부러워했다.


학과 촬영을 하며 만난 학생들은 이런 내 마음을 더 부러움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작은 일에도 반짝이는 눈빛을 지녔고 대학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뚜렷한 미래를 그린 것은 아니지만 대학생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재밌어하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생들에게 다소 무심했던 내 과거가 겹쳐졌다. 왜 난 그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 주변을 살피지 않았을까, 온전히 대학생일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경험을 왜 해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았던 과거인데, 청춘을 무심히 흘려보낸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뒤섞였다.


4년간의 대학생활을 흘려보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허함만이 내 손에 남은 기분이어서 사실 조금은 우울했다. 이럴 때면 역시 엄마에게 기대고 싶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나를 이해하고 품어줄 유일한 사람. 엄마는 이런 나에게 그저 한마디를 건넸다.


"딸, 진짜 4년의 모든 시간이 무의미했어? 정말로? 엄마 생각은 조금 다른데.

대학 4년,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날들 중에 가치없이 흘러간 시간은 없어.

과거의 모든 순간순간이 모여서 지금의 너를 만들었잖니,

정말 너에게 남은 건 부러움과 후회 가득한 공허함뿐이야? 정말?"


통화를 마치고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20살부터 내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20살부터 자취를 하게 되면서 영상회사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일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고 사람들도 좋다 보니 욕심이 생겨 점점 더 많은 일을 맡았다. 대학생활에는 소홀해졌지만 그때 경험한 짧은 경험이 내 첫회사를 광고영상회사로 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후에 신문사 역시 영상을 할 줄 알았기에 가능했다. 영상기자로 들어가 간단한 기사를 쓰기 시작하다가 글에 재미를 느꼈고 나중엔 한 면을 가득 채우는 기획기사까지 만들어 냈었다. 그리고 이직을 한 지금까지도 글을 쓰고 기획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든든하게 날 챙겨주는 언니들과 친구들 역시 알바를 하며 만났다. 과거의 순간과 결정적이었던 선택을 떠올리며 현재까지 시간을 이어보았다. 대학생으로서 그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나름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세상을 살아가며 이루어지는 내 모든 선택이 모여 미래로 흘러간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어떤 모습이든 또다시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를,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한 고민만을 하기를, 모든 순간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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