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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10. 2019

씁쓸한 기억이 아닌 따뜻한 추억

일상의 흔적 69

7월 9일, 여름인데 가을 같은 쌀쌀한 바람. 추억의 페이지를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것

모름지기 일하기 싫을 땐 폭풍 카톡만이 즐거움이다. 우연히 한가한 시간대가 맞았던 친구와 서로 폭풍 카톡을 하며 아무 말을 내뱉었다. 비교적 오래 알고 지낸 사인 아니지만 쿵하면 짝하는 타이밍이 누구보다 잘 맞는 우리라서 키보드를 누비는 손가락이 점점 현란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 말의 끝엔 늘 그렇듯 추억팔이를 시작한다.


오늘 다시 떠올려본 추억은 서울여행이었다. 서로 반쯤은 충동적으로 계획하고 급하게 비행기표를 끊어 올라갔던 가을의 서울. 당시 둘 다 남은 연차가 없어 아쉬운 1박 2일이었지만, 하루는 서로의 일정을 보내고 다시 만나 꽉 찬 하루를 보냈던 그날의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각자 또 따로, 낯설진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공간, 일상을 벗어났다는 후련함.


서울 여행은 여유로움과 한가함, 반가움으로 말할 수 있다. 정해진 코스는 대림미술관 전시 하나였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혹은 서로 각자 일정을 보내기로 했었다. 그래서 꽤 긴 거리를 걸었다. 광화문 앞 광장을 돌고 돌담을 따라 걷다 청와대를 바라보고 우연이 눈에 띈 카페의 커피 향이 좋아 한잔 사들고 다시 낙엽을 밟았다.


1박 2일 동안 서울에서 머물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우리 둘 다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 날 아침, 느긋하고 잔잔한 분위기 속 먹었던 베이글. 적당한 햇빛에 기분이 좋았고 가는 길에 불어오는 바람이 반가웠다. 들어선 카페는 낯설지만 포근했고 한적한 풍경 속에 들어선 듯 느긋했다.


두툼하고 짭짤한 베이글과 신선한 크림치즈, 정성 들여 내린 핸드드립 커피, 마음 맞는 사람. 이보다 더 좋은 일요일의 아침이 있을까 싶었다. 우린 공기마저 천천히 흐르는 이날의 아침,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낯선 공간에서 즐겼던 일요일의 아침과 그날의 분위기가 기억에 깊이 남았다.


내 삶의 공간이 아닌 전혀 낯선 곳에 아끼는 사람과 따뜻한 추억이 남아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을 또 언제 같이 가보지"라면서 곱씹을 수 있는 사람, 언제고 그 추억을 꺼내도 씁쓸한 지나간 기억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추억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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