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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05. 2019

어쩌다 마주친 하늘이 예뻐서

일상의 흔적 68

7월 4일, 맑은 하늘을 의심할 정도로 높은 습도. 용기를 내어 집까지 걸어갔다.

묘하게 날씨가 더웠다. 분명 하늘은 맑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데 어쩐지 습도는 높고 더불어 몸도 끈적이는 게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저번 주 내내 쏟아진 폭우에 정말 급격하게 더워진 날씨 때문에 제대로 걸어본 지도 오래되어 하루 종일 고민을 반복했다. 결국 좀 더 감성적인 내가 이겼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맥주나 한 캔 딸 생각으로 집까지 걸어가로 마음먹었다.


부채도 손풍기도 없는 휑한 손이 아쉬웠지만 생각보다 날씨는 덥지 않았다. 가는 곳곳에 그늘이 많았고 지하도상가는 적당히 서늘해서 천천히 걷는 정도로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진짜 나빠진 건 지하도상가가 끝나고 그늘도 별로 없는 생생한 길가를 걸어야 했을 때부터였다. 머리카락에 덮인 목에서도 땀이 나고 가방끈이 걸린 어깨도 슬쩍 만져보니 축축하다.


일단 발을 움직여 걸어가면서도 몇 번이나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봤다. 이미 반 정도 걸어온 터라 포기하긴 싫지만 차가운 무엇인가가 간절해졌다. 그렇게 표정이 점차 굳어가려고 할 때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뻤다. 핸드폰이나 땅을 보던 시선을 조금 더 올렸을 뿐인데 싱그러운 녹음과 오묘한 듯 신비한 하늘색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더위에 지쳤던 발걸음이 조금은 산뜻해졌다.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니 주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푸릇한 잔디와 나무의 냄새,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 벤치에 앉아 느긋한 저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나도 그 풍경의 하나라는 것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주만에 만난 저녁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예뻤고 여름을 맞은 녹음의 향도 상쾌했다.


오늘은 눈 꼭 감고 지나가려고 했던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샀다. 어쩌다 마주친 저녁 하늘이 너무 예뻐서 기념하듯 오늘을 기억하고 싶었다. 조금은 시원해진 몸, 다시 찾은 여유, 달달한 커피. 오늘의 이 느낌을 기억해야겠다. 아무것도 급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짜증 낼 것이 없는 오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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