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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n 28. 2019

오래도록 질리지 않을 시장 통닭

일상의 흔적 65

6월 25일, 그럭저럭 장마 전 날씨. 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기름 통닭의 맛

하늘이 흐릿한 날에는 어쩐지 기름에 튀긴 닭이 먹고 싶다... 는 핑계고 그냥 치킨을 좋아한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시무룩할 때면 '치킨' 두 글자를 보여줄 정도로. 아마 매일매일 먹어야 한다고 하면 너무 행복해서 어떤 스트레스도 다 튕겨낼 수 있을 것 같다.


'튀긴 닭'이라면 무조건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시장 치킨이 내 취향이다. 자랄 만큼 충분히 자란 큰 닭을 두툼한 나무도마에 툭툭 썰고 무심한 손으로 튀김옷을 입혀 큰 가마솥에 풍덩 넣어서 만드는 치킨. 깊은 검은 솥을 휘휘 젓을 때마다 반짝반짝 튀겨지는 닭이 모습을 드러내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행복해진다.


내가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도 조금만 뒤로 들어가면 시장 옆 치킨 골목이 있기 때문이다. 긴 골목을 따라 늘어선 가게는 저마다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노릇노릇한 치킨을 튀기고 있다. 친한 지인들을 끌고 이곳을 들어설 때면 정겨운 풍경과 고소한 냄새에 다들 미소를 짓거나 기대에 차 있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린다.(때론 허름하고 낡은 가게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지인도 있다.)


골목에 늘어선 가게 중 4년째 꾸준히 가는 치킨집은 '안동 이모 통닭', 내 기준에서는 골목의 끝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다. 끊임없이 튀겨지는 가마솥을 지나 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가족, 지인들과 혹은 직장동료들과 둘러앉아 커다란 치킨을 가운데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힌다.


자리에 앉자마자 통통하게 튀긴 똥집과 양배추 샐러드, 치킨무가 테이블에 올라온다. 이 집의 치킨은 어쩐지 통닭이라고 불러야 제맛이다. 세련되지 못한 투박한 모양새지만 거짓 없이 담백하고 순수한 오랜 전통이 담겨 있다. 큰 접시를 가득 채우고도 쌓여서 넘치게 담겨온 닭은 만드는 이와 먹는 이의 추억을 품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 집도 우연히 발견했다. 더 가까운 곳에 유명한 집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생각을 못했는데 불금에 자리가 없어서 오다 보니 이곳이었다. 푸짐한 인심도 맛도 이곳이 훨씬 좋아서 더 빨리 발견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짭잘한 후라이드를 한입 크게 물면 도톰하고 파삭한 껍질과 야들야들한 살이 입에 꽉 찬다. 이리저리 휘둘리고 채였던 하루를 위로하고 보상하는 맛이다. 양념은 충분히 소스에 절여서 바삭하진 않지만 눅진한 특유의 맛이 있다. 강한 맛은 아니지만 달달하고 매콤한 맛이 다소 심심했던 후라이드의 맛을 채워준다.


핫플레이스에 유명한 치킨집처럼 깔끔한 인테리어나 인스타에서 올릴만한 플레이팅, 놀랄 만큼 맛있는 맛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담담한 맛이다. 언제 누구와 먹든 변치 않는 맛, 오늘도 그 맛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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