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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n 18. 2019

예쁘고 작은, '얄궂은' 것들

일상의 흔적 62

6월 17일, 반팔이 그럭저럭 어울리는 날씨. 행복의 조건이란 때론

제주도에 가면 내가 꼭 들리는 좋아하는 가게가 있다. 한적한 옛날 주택 사이에 은은하게 어울려 있는 가게는 주위를 세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내가 처음 이 가게를 찾았을 때도 낡은 풍경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따뜻하게 녹아있었다. 조심조심 찾은 작은 나무문에는 '느리게 가게'라는 이름이 달렸었다.


느리게 가게, 가게에 이중적인 뜻이 담겼다고 생각했다. 물품을 파는 가게 혹은 가자의 제주도 사투리 가게. 느림을 파는 곳, 느린 걸음을 옮기는 곳. 잠시 가만히 가게 앞에 서서 느리게라는 말을 곱씹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향긋한 향기도 설레는 마음을 더 키웠다.


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는 상상보다 더 작았다. 제주도에서 거주하는 예술가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엽서부터 재활용 캔으로 만든 화분, 재활용 유리병에 채운 향초까지 소담한 가게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딱 한 명만이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통로를 누비며 가게 안을 꼼꼼히 둘러봤다. 소박하고 조용한, 그 누구의 시선도 없는 이 공간은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엄만 이 가게에서 파는 것들을 보고 '얄궂다'라고 했다. 엄마 눈엔 그냥 그림이 그려진 조금 두꺼운 종이였고 태우면 끝날 양초여서 늘 "아이고 얄궂네, 어디에 쓰려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작고 예쁜, 얄궂은 것들을 좋아한다. 집을 꾸미는 것에는 통 관심이 없으면서도 소품샵에 오면 늘 손에 무엇이든 들고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이렇게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고민하고 세심하게 향을 맡고 집에 걸린 상상을 하며 데려온 얄궂은 소품들은 선물용으로 쓰인다. 침대 옆 협탁에 조심히 보관해두고는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면 하나씩 그 사람에게 맞는 선물을 고른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품을 볼 때면 행복한 마음이 차오른다. 선물을 받은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마지막 날 가게에 들려 고르고 골라 데려온 향초와 엽서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행복했다. 이 예쁘고 얄궂은 소품들을 누구에게 줄지는 그날그날의 내 마음에 달렸다. 지인들을 한 명씩 떠올리며 오늘의 이 소품과 어울릴지 상상해본다.


(아차, 사진은 아직 찍는 습관이 들기 전이라 한컷도 찍지 못한 나를 탓하며 '느리게 가게' 주인분의 인스타에서 가져왔다. 느리게 가게는 사실 지금은 자리를 옮긴 상태다. 처음 가게와 다르지 않은, 느리게 가게만의 소박함이 듬뿍 담긴 곳. 주인 부부의 손길이 스민 '비 오는 날의 숲' 식당 안에 소품샵이 작게 자리 잡고 있다. 옮긴 곳은 더 제주의 시골 풍경이 묻어있다. 내 키와 비슷한 담장을 토독토독 걸어가다 보면 포근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늑한 아지트를 만날 수 있다. 언젠가 제주에 간다면 이곳의 따뜻한 수프를 맛보고 소품샵을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아쉬운 대로) 유일하게 맑았던 마지막 날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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