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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n 17. 2019

가슴 한편에 기억을 꺼내고 싶을 때

일상의 흔적 61

6월 14~16일, 쏟아지는 비에 우울한 첫날, 화창했던 둘째 날, 맑은 하늘이 쓸쓸한 마지막 날. 집에 다녀왔다.

평일 연차를 내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저 집에 가는 것뿐이라며 의연한 척했지만 한 달 전부터 손꼽아 온 날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날은 겨우 이틀뿐이었지만, 그저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행복했다.


이틀 동안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옷장에서 묵은 옷을 버리고 예쁜 옷을 샀고, 눈여겨보았던 초밥집을 방문했다. 손을 꼭 잡은 채 비 오는 거리를 걸었고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예약해 둔 호텔 레스토랑을 찾았다. 적막하고 어두운 밤, 등 뒤에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다행히 다음날은 날씨가 좋았다. 화창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엄마가 일갈 때면 꼭 사 먹는 김밥을 사 먹으며 바다 옆을 달렸다. 그러다 뜬금없이 발견한 쌀국수집에서 욕심껏 배를 채웠고, 늘 제주도에 오면 찾았던 돼지갈빗집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짧은 시간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 편의점에서 사 온 달달한 커피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의 핸드폰을 보니 짧은 이틀 동안 찍은 사진이 꽤 많이 모였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불과 어제를, 몇 시간 전을 추억했다. 순간순간 멈춰서 사진을 찍고 찍어달라고 요청하고 끊임없이 카메라를 드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난 여행할 때 사진을 많이 찍어두거나 따로 기록을 남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 순간의 기분과 날씨, 풍경을 눈으로 담고 냄새를 기억하고 주위 소리를 기억하는 걸 더 좋아했다.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 것보다 조용히 그 시간을 가슴에 기억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편이었다. 여행뿐 아니라 평소에도 사진을 잘 남기지 않으니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도 겨우 1000장 남짓이다.

(그나마 브런치를 시작하며 글에 맞는 사진을 쓰고 싶어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여행 가서 수백 장의 사진을 남기는 것을 유난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결국 그것이 오랫동안 그날을 추억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우리가 갔던 여행지도, 그곳의 식당도, 그날의 기억도, 살아있는 추억과 오래된 기억은 변하거나 잊히기 마련이다.


때때로 기억을 꺼내고 싶을 때면 사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풍경에서 그날의 기억을 꺼내고, 사진 속 표정에서 내 기분을 꺼내고, 사진의 느낌에서 찍어준 사람의 애정을 꺼내야겠다. 영원한 건 없으니 언젠가 더 이상 내 눈앞에서 다시 살아있는 추억을 만날 수 없을 때면 사진을 꺼내 가슴 한편에 숨 쉬는 기억을 만나야겠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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